광란문의 초대 총수 곽회열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불조불야(조정에 속하지도, 야인으로 남지도 않는다)'라는 광란문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절도사의 직을 이은 뒤로는 광란문 제자로서의 신분을 숨겼다…
광란문의 초대 총수 곽회열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불조불야(조정에 속하지도, 야인으로 남지도 않는다)'라는 광란문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절도사의 직을 이은 뒤로는 광란문 제자로서의 신분을 숨겼다.
훗날 그가 죽음에 이르자 스승 곽회열이 그 유골을 찾으려 고군분투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생전에 쓰던 술병을 거두어 무위산 정상에 대신 묻었다.
광란문의 '절섭묘당(조정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와 '삼불류(세 가지를 남기지 않는다)'라는 피의 맹세는 모두 이때부터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