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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번이 양주와 감주를 함락한 후 길이 끊어져 왕래가 어려워지자, 하서, 안서, 북정은 외지에 고립된 채 지원군 없이 전투를 이어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

토번이 양주와 감주를 함락한 후 길이 끊어져 왕래가 어려워지자, 하서, 안서, 북정은 외지에 고립된 채 지원군 없이 전투를 이어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대력 9년, 10년에 걸친 전투 끝에 하서 관찰판관 이수장이 부하들을 이끌고 싸우다가 전사했다. 건중 초에는 이주 자사 원광정이 사람들을 독려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성을 지켰으나, 식량이 바닥나자,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들어 순절했다. 정원 2년, 사주의 수비 장군 염조가 10여 년을 버텨내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토번에 항복했으나, 토번이 신발에 넣은 독에 목숨을 잃었다. 정원 5년, 서주 도독부 장사 이중휘와 그의 휘하 부대가 수년간 지켜온 성이 그의 전사와 함께 끝내 함락되었다. 정원 7년, 북정 도호 양습고가 힐우가사에게 유인당해 죽임을 당했으니, 2천의 병사 가운데 살아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원 8년, 북정 수비병이 전멸하고 서주 전역이 함락되자, 마침내 소식마저 완전히 끊겼다. 안서 도호 곽흔, 진수사 노양, 정거, 양일우와 네 요충지의 수비병들은 최후까지 퇴각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나, 그 이후는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후대의 기록에 따르면, 원화 3년 무위 군왕이자 안서 사진 절도사인 곽흔이 죽으면서, 안서 지역은 마침내 완전히 함락되었다고 한다. 안사의 난 이후, 안서와 북정의 장병 4만 명이 고립된 땅에 남겨진 채 40여 년 동안 수백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허나 살아남은 자는 백 명도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모두 백발의 노병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이는 없었다. 청사에는 겨우 몇 줄의 기록으로 남았을 뿐이나, 그 충절의 정신은 천년의 세월 동안 이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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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번이 양주와 감주를 함락한 후 길이 끊어져 왕래가 어려워지자, 하서, 안서, 북정은 외지에 고립된 채 지원군 없이 전투를 이어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