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교방의 곡명으로, 후에는 사조명이 되었다. <통전>과 <악부잡론>에 따르면 이 곡은 수양제가 강도에 행차할 때 악공 왕령언의 아들이 연주한 곡이다. 왕령언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
당나라 교방의 곡명으로, 후에는 사조명이 되었다. <통전>과 <악부잡론>에 따르면 이 곡은 수양제가 강도에 행차할 때 악공 왕령언의 아들이 연주한 곡이다. 왕령언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궁조는 군주다. 군주의 권력은 되돌릴 수 없고 수양제는 남순 후 장안으로 복귀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도리요결>에 의하면 당나라 때 <안공자>는 태족각에 있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전해지는 것으로는 중려조의 '근'과 반섭조의 '령'이 있으나, 곡의 끝맺음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