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 4년, 거란족이 온 땅을 불사르고 백성을 도륙하던 때에 붉은 소매의 협객이 성안으로 잠입했다. 한 주점 점주가 거란에 투항하여 그날 밤 군졸을 위해 연회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그 배신자를…
개운 4년, 거란족이 온 땅을 불사르고 백성을 도륙하던 때에 붉은 소매의 협객이 성안으로 잠입했다. 한 주점 점주가 거란에 투항하여 그날 밤 군졸을 위해 연회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그 배신자를 죽이러 갔으나, 점주는 거란족을 꾀어 주루에 불을 지르고 적을 도륙하려는 자였다.
두 사람은 같은 편이 되어 거란족을 모두 죽였다. 점주가 마지막 술 항아리를 꺼냈고 협객은 천을 뜯어 자리를 마련했다. 거란군의 시신 위에서 그들의 연회가 열렸다. 사방은 불길로 치솟았으나 그 속에 술 향이 진동했다.
그때 정씨 성의 거지 하나가 불쑥 들어섰다. 그는 거란의 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죽어가는 형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음식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협객과 점주는 마음 씀씀이에 탄복하여 그를 술상에 초대했고 점주는 웃으며 무엇을 낼 수 있냐고 물었다. 거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고 겨우 작은 잎사귀 하나를 꺼내 놓았다.
협객과 점주는 크게 웃으며 어찌 아니 되겠느냐 하였고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이튿날 아침, 협객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천경나루 근처에는 금빛의 달빛 잎새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거란군은 그날 이후 협객을 잡겠다며 성안 곳곳을 뒤졌지만 그림자 하나 찾지 못했다. 다만, 소문 하나가 마을에 떠돌았다.
그날 밤, 소생학당에 한 이름 모를 백성이 발을 들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