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에 도착했네.' 여자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자, 소매 끝에 스친 바람에 탁자 위의 촛불이 거세게 흔들렸다. 남명 공자는 급히 소매로 그 촛불을 가렸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고, 이내 굳은살이 박힌…
'동궐에 도착했네.'
여자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자, 소매 끝에 스친 바람에 탁자 위의 촛불이 거세게 흔들렸다. 남명 공자는 급히 소매로 그 촛불을 가렸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고, 이내 굳은살이 박힌 손 하나가 반대편에서 함께 촛불을 감싸 쥐었다.
"강남에서 헤어진 뒤로 참 오랜만이군." 그 손의 주인이 입을 열었다.
남명 공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있던 이는 금의를 걸친 오만한 공자가 아니었다. 수수한 옷차림의 한 낭자였다. 눈매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참 많이 변했군." 남명 공자가 무심코 말했다.
동궐은 가볍게 웃으며 남명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니야. 그렇게까지는 아니지."
그날 밤, 동궐은 당전 징수책 이야기를 시작으로 구류문, 하백, 석수신, 상평사에 이르기까지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명 공자는 말없이 귀를 기울인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마치 장단을 맞추듯이. 촛불이 끝자락에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네가 원하는 건 많지 않더군. 들어줄 수 있어. 다만..." 남명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남은 촛불에 머물렀다. "...이 촛불을 지켜줘."
"그래."
동궐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낮게 울며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바람이 그리 세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