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은 전해지지 않는 비밀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전부터 많은 낙타 사육자들이 '방생'을 조금씩 알고 있었다. 사람마다 '방생'을 행하는 방식도 달랐다. 어떤 이는 붉은 버드나무 새순을 …
'방생'은 전해지지 않는 비밀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오래전부터 많은 낙타 사육자들이 '방생'을 조금씩 알고 있었다.
사람마다 '방생'을 행하는 방식도 달랐다. 어떤 이는 붉은 버드나무 새순을 태우고, 어떤 이는 낙타를 지하 광맥의 균열로 데려가 약사경을 외우며, 또 어떤 이는 낙타의 혹에 특정 연도의 소금을 바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거의 모두 성공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생'이 효과를 내는 근원이 사막의 감사함에 있다고 믿었고, 의식이나 도구는 그 감사를 이끌어내는 매개일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모래폭풍이 나타나기 전의 일이었다.
모래폭풍은 너무 많은 것을 파괴했고, 나는 오랫동안 '방생'을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낙타 역참이 세워진 지 이제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나 역시 그것이 모래폭풍에 쉽게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이 처음으로 낙타 역참에서 낙타를 '방생'하던 날, 나는 좋은 술 한 항아리를 모두 비웠다.
이 세상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고, 운명에는 생과 사가 돌고 돈다. 우리 하서는 그렇다. 모든 종점은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주술?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위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