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가면을 바꾸고 과거를 버린다. 누구는 미래를 위해, 누구는 현재를 위해, 누구는 돈을 위해, 누구는 사랑을 위해, 또 누구는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검은 갑옷을 걸쳐 …
세상 사람들은 가면을 바꾸고 과거를 버린다. 누구는 미래를 위해, 누구는 현재를 위해, 누구는 돈을 위해, 누구는 사랑을 위해, 또 누구는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검은 갑옷을 걸쳐 입는 순간 깨달았다. 과거를 버린다는 건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내려놓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과거를 버리고, 미래도 버리고, 이름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세상과의 모든 연을 끊어야 했다.
그때 누군가 한마디 했다.
"입었으면, 이제 못 벗는다."
"나는 괜찮지만... 그게 제일 안타깝지."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였는지, 남이었는지도 흐릿하다.
그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여긴 이미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이 지상에 있을 땐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지하에 살게 되면 올려다보는 건 지상의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둘 다 닿을 수 없는 곳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돌아보았는지도, 그는 이미 기억하지 못한다.
매일이 어제의 반복처럼 흘러가고, 시간은 되풀이되는 물살처럼 기억이라는 석판을 갈아 없앴다. 그는 그저 자리에 앉아 손에 든 무기를 닦는다. 그럴 때면 손바닥의 오래된 굳은살과 몇 줄의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가끔 닦던 손을 멈추고, 그 자국들을 한참 바라본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