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향선은 한 마을을 지나다 길가에서 당나귀 등에 묘한 자세로 늘어진 남자를 마주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 몇 번이고 힐끔이자, 남자는 눈도 뜨지 않은 채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참으…
어느 날, 한향선은 한 마을을 지나다 길가에서 당나귀 등에 묘한 자세로 늘어진 남자를 마주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 몇 번이고 힐끔이자, 남자는 눈도 뜨지 않은 채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참으로 고약한 팔자로구나"
한향선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근처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한 소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사람 속여서 뭐 얼마나 벌겠습니까?"
"하하, 연주는 재살이 꼈고 일주에는 고진이 있구나. 이 둘이 같이 있으면 평생 외롭고 거칠게 살 팔자지."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죠?"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고, 가까운 사람은 죄다 곁을 떠날 팔자라니...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는 죽을 것이고,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은 평생 고생을 면치 못하겠군, 그래."
"..."
한향선은 말문이 막혔다. 처음보는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다 알고있다는 듯 말하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저치가 다 팔자 탓이라는 건가 싶었다.
"팔자가 더럽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당신 같은 도사가 갑자기 상처에 소금을 뿌릴 것 까지는 없지 않나요?"
"사실 그건 자네의 팔자가 아니야. 어떤 남자의 팔자지. 아마도 자네와 가장 가까운... 혈육이겠군. 자네는 그 운명에 억울하게도 휘말린 게지."
"가장 가까운 혈육이라... 아, 그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놈을 말하는 건가."
한향선은 아내와 자식까지 팔아먹은 친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를 꽉 물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도사는 애매한 대답을 뒤로한 채 당나귀를 몰아 터벅터벅 멀어져 갔다. 한향선은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온 몸이 굳은 듯,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