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에서 깨어나니 곁의 이부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온기 없는 쪽지 반 장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어. 조금만 기다려 줘." 그는 역참의 깃발 아래 앉아 해가 …
단잠에서 깨어나니 곁의 이부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온기 없는 쪽지 반 장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어. 조금만 기다려 줘."
그는 역참의 깃발 아래 앉아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다림으로 채웠다.
왁자지껄했던 지난 며칠간의 소란스러움은 늘 어딘가 허전했다. 그녀가 떠나기로 결심한 지금에야, 그는 그녀를 만난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확신했다.
그녀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 생각에 마음이 놓여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평소 손안에 넣고 만지작거리던 귀한 옥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바람을 막아줄 양가죽 옷과 기력을 북돋워 줄 감송향까지...
그녀가 없는 집은 그저 몸을 뉘는 처소일 뿐,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녀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그녀가 다시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그때가 오면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