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 한 해가 지났건만, 내가 맡은 일은 고인 우물물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새해가 밝았으니 새 기운도 따라와야 하는 법. 올해는 반드시 활로를 찾아내야겠다! 이월 열엿새 지난 두 달 동안은…
정월 초하루
한 해가 지났건만, 내가 맡은 일은 고인 우물물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새해가 밝았으니 새 기운도 따라와야 하는 법. 올해는 반드시 활로를 찾아내야겠다!
이월 열엿새
지난 두 달 동안은 주로 선휘원의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유심히 살폈다. 연초 제례부터 명절 연회, 장춘절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관청으로 들어가는 모습만 보일 뿐, 도통 나오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저리 밤낮없이 바쁘게 굴다간 몸 상하기 십상이지. 영 아니다, 영 아니야.
삼월 열여드레
다행이다, 정말 천만다행이야! 본래는 삼사 자리를 노려볼까 했으나 운 좋게도 떨어졌지 뭔가. 안 그랬으면 어제 삼사에 난 불에 나까지 휩쓸려 잿더미가 될 뻔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숫자와 셈에 그리 밝은 편도 아니다. 달마다 해마다 장부를 맞추는 일은 아무래도 내 그릇이 아닌 듯하다. 아니다, 아니야.
오월 초아흐레
사천감은 날마다 바쁜 척하지만, 실은 꽤 한가한 편이다. 하지만 천문에 이변이 생기거나, 궐내 귀인이 병에 걸리거나, 재앙이 연달아 터지면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희생양이 되고 말겠지. 이 역시 아니다, 영 아니야.
유월 스물둘
나문지야, 나문지. 언제까지 이것저것 간만 보며 재고만 있을 텐가. 이대로 허송세월만 보낼 작정이냐?
팔월 초사흘
들리는 소문에 소문관에 결원이 생겨 사람을 뽑는다는데, 하필 한 자리뿐이라 하네. 어찌 동료인 제상을 홀로 버려두고 나만 갈 수 있겠는가? 이 또한 아니다,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