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여진경은 마침내 그 소년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전영. 이 두 글자는 어떻게 쓰는 것인지, 그녀는 조용히 손으로 한 획 한 획 따라 썼다. 전영, 전영, 전영... 조금은 기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여진경은 마침내 그 소년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전영.
이 두 글자는 어떻게 쓰는 것인지, 그녀는 조용히 손으로 한 획 한 획 따라 썼다.
전영, 전영, 전영...
조금은 기뻤다.
수십 년을 찾아 헤맨 사람이 느닷없이 그녀의 앞에 스스로 나타나다니.
이게 바로 숙명일까?
그녀는 한평생 운명을 원망하고, 운명에 맞서며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운명에 감사하고 싶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령 그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혹은 처음부터 그녀를 기억한 적이 없을지라도 상관없다. 이번의 재회는 그녀만 알고 있다 해도 괜찮다.
그가 그녀에게 부탁한 일은... 당연히 두말없이 수락했다.
그의 검이 되든, 혹은 그를 대신해 두 손을 피로 물들이든 상관없다. 그가 그녀를 필요로 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도움에 거래라는 허울을 둘렀다. 비록 눈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조차 없었지만.
이유 없이 수락한다면, 그처럼 신중한 사람은 오히려 의심하기 마련이다.
다만, 거란 사신을 보호하는 일이 그의 계획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을 뿐이다. 그는 청풍역에 가서 다시 암살을 할 것이다.
당나라의 영토인 청풍역에는 막강한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데, 그가 어찌 마음대로 오간단 말인가?
이것저것 따질 새 없이, 여진경은 거래에 조건을 하나 덧붙였다. 그녀와 함께 갈 것.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목소리에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풍역에 가서 무얼 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떠난 후에 다시 돌아올지 아닐지 제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혹여 도망이라도 치시면, 두 눈이 먼 제가 어디에서 그대를 찾겠습니까?
그녀는 대충 거짓으로 얼버무렸다. 다행히 그는 믿는 듯 보였다.
눈을 바꿔주겠다 했잖소. 반드시 눈을 가져다주겠소. 내뱉은 말은 필히 지킨다오.
믿지 않습니다.
그녀가 못 믿겠다는 척을 하자, 그가 크게 한숨 쉬며 말했다.
3일 후에 떠난다오. 늦으면 기다리지 않겠소.
3일이면 충분했다.
행낭을 꾸리고 채비를 마친 뒤, 홀가분히 그를 따라 생사를 건 길에 올라, 그를 지키기에 충분했다.
...그 변고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떠날 때, 여진경은 어째서 혼례복으로 갈아입었을까.
그녀 자신도 명확히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훗날 누군가가 약조를 위해 호수 아래로 그녀를 찾으러 올 것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혼례복을 입고 그와 처음 만났으니, 작별도 혼례복을 입은 채로 하자.
그렇게 하면, 이미 서로 만났었던 수천 날 전 그날을 그가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그대의 일을 꼭 해내십시오.
살아남으십시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전영.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득한 산골짜기에 듣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