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종루 아래, 종 치는 노인의 퉁소 소리는 여전하다.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그의 한가로운 기분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퉁소 소리가 문득 바뀌더니, 마치 흐느끼듯 하소연하듯 이어진다. 이곳에 온…
태평종루 아래, 종 치는 노인의 퉁소 소리는 여전하다.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그의 한가로운 기분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퉁소 소리가 문득 바뀌더니, 마치 흐느끼듯 하소연하듯 이어진다. 이곳에 온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곡조 속에 담긴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그것은 도도히 흐르는 낙수와 새하얀 눈이 맞부딪치는 장면이었고, 매서운 매화와 맑으면서도 깊은 샘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이었으며, 한때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원수가 되어 가는 전환이기도 했다. 사랑과 의가 가장 깊고도 아프게 남는 순간이자, 서로 등을 돌린 채 각자의 길로 떠나는 이별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 속 인물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그날의 싸움에 대해서는 그녀가 한 번도 말해 준 적이 없었고, 마지막에 누가 이겼는지 알지 못하지만, 노인은 그 생각을 알아챈 듯 먼저 입을 열어 묻는다.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남자가 이겼소. 향선 이모가 숨겨 두었던 서신을 본 적도 있고, 고별주를 모두 강물에 쏟아 버리던 그 상심한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패배한 사람은 분명 향선 이모일 것이다. 가장 소중히 여겼던 마음을, 그렇게 잃어버린 것이니까.
노인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의 남은 부분을 천천히 들려주었다. 현검의 의, 청천문의 의, 낙신의 의, 연북맹의 의... 모두가 도의라는 화살촉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활시위를 당기는 손은 결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