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오늘은 행군을 잠시 멈추고 이 근처에 주둔하게 되어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네. 형은 미처 상상도 못 했겠지. 어리기만 했던 내가, 수년 만에 군복을 걸치고 장창을 쥔 채 형이 마음속으로 그…
이 형,
오늘은 행군을 잠시 멈추고 이 근처에 주둔하게 되어 이렇게 찾아올 수 있었네. 형은 미처 상상도 못 했겠지. 어리기만 했던 내가, 수년 만에 군복을 걸치고 장창을 쥔 채 형이 마음속으로 그리던 그 모습이 되어 있으니 말이야.
전장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메마른 시신과 흩어진 사지,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지지. 형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곳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마다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생각 하나로 다시 버티곤 했거든.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 만약 형이 아직 곁에 있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잘 맞는 동료가 되었을 거라고. 그리고 형의 공적은, 분명 나를 훨씬 넘어섰겠지.
우물가에 형이 생전에 참 좋아하던 붉은 술 장식이 달린 창을 꽂아 두었어.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한 탓에 날은 많이 상했지만, 붉은 술만은 예전 그대로더군. 부디 이 창이 형의 긴 잠을 함께하고, 또 내게 돌아갈 방향을 알려주길 바랄 뿐이야.
내일이면 다시 길을 나서야 해. 언제 다시 이곳에 와 형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역시 알 수 없겠지……
모월 모일
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