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라고 시작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사관들은 예로부터 오시 즈음 와서 신시쯤 슬그머니 퇴근하는 훌륭한 전통이 있으니, 여기서 함부로 남을 모함할 수는 없다…
달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라고 시작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사관들은 예로부터 오시 즈음 와서 신시쯤 슬그머니 퇴근하는 훌륭한 전통이 있으니, 여기서 함부로 남을 모함할 수는 없다.
고로, 이 기이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햇살이 아주 눈부시게 내리쬐는 오후였다.
봄날은 따스하고 화창해 낮잠을 즐기기에 더없이 알맞았다. 사관 무리들은 저마다 볕이 잘 드는 명당을 찾아 누웠고, 뜰에는 새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그때 갑자기! 처마 밑에서 단잠에 빠져 있던 필자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해는 아직 서쪽으로 기울지 않았거늘, 홀연 뜰의 새소리는 뚝 끊겨 있었다.
바람이 한 차례 스쳐지나간 순간, 누군가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무공은! 자네 혹시 문진..."
대나무 잎이 바스락거렸다. 이어서 또 다른 목소리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관을 떠난 자는 더 이상 사문의 제자가 아니니, 내 입으로 그 이름을 올릴 자격 또한 없소."
먼저 입을 연 이가 노하며 소리쳤다.
"그럼 어찌 강호 일에 끼어드는 건가!”
상대편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강호가 내 눈앞에 친히 들이닥쳤으니 내 어찌 외면하겠나."
이내 대나무 발이 살짝 흔들리더니, 한참 적막이 흘렀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스물까지 세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손으로 발을 살짝 걷어 밖을 엿보았다.
언뜻 보아선 아무도 없는 듯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그제야 대나무 숲과 똑같은 색의 청포를 입은 자의 형체가 아스라이 보였다.
청포라. 그렇다면... 우리 사관의 동료란 말인가?
촤르륵...
필자가 들고 있던 대나무 발이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혼비백산하여 다시 발을 걷어 보니, 그 사람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곳에는 오직 맑은 바람과 푸른 대나무만이 덩그러니 남아 스산하게 흔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