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월 이십칠일 해질녘 졸업이 임박하여 오늘 여러 졸업 제자들의 명단을 모으고 그 뜻을 하나하나 적어두었다. 제자마다 바라는 바가 달라, 졸업 때 건넬 책도 모두 달라야 하니 오랫동안 고심했다. 그 …
동월 이십칠일 해질녘
졸업이 임박하여 오늘 여러 졸업 제자들의 명단을 모으고 그 뜻을 하나하나 적어두었다. 제자마다 바라는 바가 달라, 졸업 때 건넬 책도 모두 달라야 하니 오랫동안 고심했다. 그 사이 성무와 소매가 또 한 번 대전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무는 졸업 전에 한 번은 꼭 이겨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승산이 썩 많아 보이진 않는다.
동월 이십팔일 새벽
가랑눈이 내려 내년에도 풍년이 기대된다. 하지만 올겨울도 전란이 끊이지 않아 산 아래 백성들은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 여러 동문들과 함께 산을 내려가 땔나무를 나누어 주며, 추위와 눈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왔다. 진원과 축조를 연마하는 제자들은 곳곳을 돌며 고장 난 곳을 손보는 데 힘썼다.
동월 이십구일 저녁
고운문의 소 선생께서, 소무가 수학과 도형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서원의 다른 선생들 역시 그를 칭찬했었다. 내년 봄이 오면 반드시 입학시켜, 그 재능이 묻히지 않도록 해야겠다. 부효와 소매, 사농 선생도 모두 이에 동의하셨다.
납월 초하루 새벽
난성이 함락되어 북쪽에서 내려온 백성들 중 많은 이들이 얼굴에 "불살 낙형"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왔다 하니, 서원 모두가 크게 분노하였다. 서원의 기관에 능한 자들 십여 명이 호타 군영으로 가겠다 청하였고, 군에 양식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운반과 길을 뚫을 기구를 여러 개 챙겨가면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해질녘이 되자 군영에 자원하겠다는 이들이 서른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납월 초엿새 새벽
원주께서 떠난 지 벌써 보름, 그 사이엔 서신 한 통만 도착했으니, 전황이 매우 급박하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분의 당부대로 마을 이웃을 모두 철수시키고 제자들을 흩어지도록 했지만, 절반 이상은 먼저 떠나길 원치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은 "천하의 의사들이 모두 호타로 향하는데, 이미 학문을 익힌 우리가 어찌 손 놓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기관을 들고 전장으로 가기를 자청했다. 아직 정오가 되기 전 원주께서 돌아오셨고, 우리가 짐을 꾸려 중도교로 향하려 하였다. 그때 관 선생이 이르러 말하였다. 오랑캐의 군사와 기마가 이미 산 아래까지 이르렀다고. 이처럼 긴박한 시각에 오랑캐가 병력을 나누어 중도교를 비켜 곧장 서원을 치러 온 것은 도대체 무슨 수작인가? 복병에 포위당할 위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납월 초엿새 낮
오랑캐가 길을 따라 불태우고 약탈하며,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다. 마침내 서원 앞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포위해 항복을 권하며, 거란 자제 들이고 거란 문자 가르치기를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천하의 뜻을 바꾸고 칼과 창을 비단과 옥으로 바꾸겠다 하였다. 이제야 오랑캐의 속셈이 드러났다. 우리 서원을 선봉으로 삼아, 중원의 어진 이들과 지사의 마음을 꺾고, 중원 백성의 글까지 고치려는 것이다. 낑낑거리는 개 짖음 소리가 역겨울 따름이다. 이제 서원의 땅으로 그들의 병력을 붙잡아 두고, 그 발톱과 이빨을 꺾어, 우리 군사의 기세를 드높이고자 한다.
납월 초열흘 낮
오랑캐들이 물에 독을 타고, 또 독연을 피워댔다... 서원의 양식과 풀이 모두 불타 없어져 모두가 굶주리고 있다. 나는 노인과 아이들이 고통받는 걸 차마 볼 수 없어, 모두 나가기를 권했으나 사람들은 답했다. 오랑캐는 살육을 일삼는 자들이니 믿을 수 없다고. 결국 단 한 사람도 투항하려 하지 않았다.
납월 초열흘 해질녘
원주께서 말씀하신 '천기만상'이라는 계책이 거짓임을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날 그분께 여쭤보니, 빙그레 웃으시며 답하셨다. "거짓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하니, 그저 쓰는 날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에 이르러, 끝내 그 계책을 쓰고야 말았다. 이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납월 십일일 새벽 하산
오늘 사형과 사저들과 함께 하산을 치렀다. 비록 아직 입학하지 못하였으나. 대사형의 친서를 가져왔다. 소무가 살펴보니 그 안에는 사형, 사저들, 그리고 선생들께서 남긴 말씀이 여럿 적혀 있었다. 훗날 불견산에 가게 된다면, 이 친서를 학 원주의 동문에게 건네려 한다. 만약 끝내 불견산까지 닿지 못한다면, 남쪽을 향해 떠나는 다른 대협에게 이 친서를 부탁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