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따지면 아구는 담향 같은 취화음 제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어디서든 눈에 띄며, 아무 데나 정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정작 마음은 두지 않는다. 불쑥 나타났다 싶으면 더…
이치로 따지면 아구는 담향 같은 취화음 제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어디서든 눈에 띄며, 아무 데나 정을 흘린다. 그러면서도 정작 마음은 두지 않는다. 불쑥 나타났다 싶으면 더 빨리 사라지고, 어렴풋한 향기가 나는 그림자만 남겨 사람 속만 타게 한다. 오늘도 딱 그 꼴이다. 분명히 담향이 먼저 누각에서 한잔하자고 불러 놓고 정작 감감무소식이다.
아구는 속으로 수없이 따졌지만, 매번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취화음 제자들은 원래 다 저렇지. 지금쯤 또 어디선가 좋은 사람 만나 웃고 있겠지. 내가 뭐 하러 담향한테 신경을 쓰나? 그런데 왜 하필 담향만 보면 더 약이 오르지?
그날 신선 나루 꽃나무 아래에서였다. 담향이 준수한 유협을 취화음으로 끌어들이길래, 아구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 유협은 차라리 이원으로 들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되레 아구가 취화음 제자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담향은 날마다 아구 곁에 붙어, 한쪽으론 가무를 평하고 다른 쪽으론 희곡을 손봤다. 둘은 마치 한 뿌리에서 난 꽃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원 사람들은 춤과 음악의 길에서 기예를 으뜸으로 친다. 반면 취화음은 가무 속 정취를 더 중히 여긴다. 담향의 말끝에서는 아구와는 다른 견해가 자주 흘러나왔다.
천하의 노래와 춤, 연극은 겉모양이 제각각이어도 큰 이치는 서로 통한다. 담향이 가무와 희곡을 논할 때면 사람이 아예 달라 보였다. 느슨한 모습을 벗어 던지고 더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낸다. 평소의 담향과는 매우 다르다. 그럴 때마다 아구는 멍하니 담향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어찌 이리 결이 많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사람 마음이 자꾸만 더 궁금해진다.
담향이 눈을 모아 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구, 왜 그렇게 빤히 보나. 언니가 한 말이 뭐가 틀렸더냐?"
아구는 멈칫하더니 솔직히 털어놓았다. "담, 담향의 말이 맞아...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어. 담향이 저렇게 있으면 말이 안 나와."
담향은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이내 크게 웃어 버렸다. 웃다가 몸이 풀려 아구에게 기대어 버리니,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원의 형제자매들은 말한다. 저건 취화음 제자들이 쓰는 풍류 수법이며 아구 같은 순진한 이원 제자를 골려 준다고. 담향이 불러 내면 아구는 매번 단단히 마음먹고 거절하려 하지만, 담향의 웃는 눈을 보는 순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양이 같은 그 눈매가 사람을 딱 붙잡는 것이다.
그래, 됐다. 세상사에 발을 들여 세상 인정을 맛보는 것 또한, 이원 제자에게는 중요한 수양이니.
창밖에는 꽃그림자가 어지럽다. 떨어진 꽃잎이 나무를 맴돌고,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다.
아구는 눈썹을 찌푸리고 눈앞의 화본을 노려보지만, 도무지 글이 들어오지 않는다. 책 속의 사랑과 미움은 하늘로 흩어져 버린 듯하고 아구의 가슴엔 다른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 마음이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시선이 빽빽한 글자에서 떠나 창밖의 외로운 꽃잎 한 장으로 흘러갔다. 꽃잎은 천천히, 가볍게 내려앉아 땅에 닿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설마... 안 오는 건가?
아구는 스스로 고개를 홱 저었다. 이제 그만, 담향 생각은 그만둬야 한다!
희곡이다. 지금은 눈앞의 희곡이 제일 중요하다!
"딸랑~ 딸랑~"
그 익숙한 방울 소리가 들리자... 아구는 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담향이 옷자락의 낙화를 털어 내며, 웃음을 머금고 걸어온다. 옥 같은 가지와 나무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 마치 처음 마주했던 순간처럼.
담향의 손에는 새하얀 배꽃 한 가지가 들려 있다. 향기로운 눈발을 가지고 온 듯했다.
봄날은 길고, 제비는 바삐 난다.
만약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이 인과 속에 성냄이 몇 할이고 가엾음이 몇 할이든 상관없다. 사모함이 얼마이고 사랑이 얼마인지도 이제는 그리 따질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