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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방은 남산처럼 오래 살고, 동해처럼 번성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예전에는 궁궐의 서쪽과 북쪽의 경계를 일컬었으며, 군기감, 유초고, 인견사, 린대와 같은 관청 주요 시설과 심씨 저택, 범씨 저택,…

수창방은 남산처럼 오래 살고, 동해처럼 번성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예전에는 궁궐의 서쪽과 북쪽의 경계를 일컬었으며, 군기감, 유초고, 인견사, 린대와 같은 관청 주요 시설과 심씨 저택, 범씨 저택, 조씨 저택 등 고관들의 대저택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멀끔히 차려입은 부호 또는 귀족으로, 대부분이 조정의 관원이거나 상인 이씨, 부잣집 자제 등이었다.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병부상서에서 지형지세를 파악해 백성들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오래된 지역은 수창방, 함녕방, 천파방의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눴다. 이리하여 오늘날 사람들은 금수문 거리 이남의 지역을 단순히 수창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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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창방은 남산처럼 오래 살고, 동해처럼 번성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예전에는 궁궐의 서쪽과 북쪽의 경계를 일컬었으며, 군기감, 유초고, 인견사, 린대와 같은 관청 …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