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청이라 불리기 전까지 성도 이름도 없는 계집아이에 불과했다. 봉화가 하늘을 뒤덮는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 부모는 난세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했고, 그녀에게 이름 하나 지어줄 마음도 여력…
그녀는 청이라 불리기 전까지 성도 이름도 없는 계집아이에 불과했다.
봉화가 하늘을 뒤덮는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 부모는 난세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했고, 그녀에게 이름 하나 지어줄 마음도 여력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생모는 몸에 두르고 있던 청색 옷을 벗어 그녀를 세심히 감싸고는 좁은 검은 상자 안에 넣어 물 위에 띄웠다. 물결 따라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한번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체온은 따뜻했다. 아마도 하늘의 자비였으리라. 물길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지 않고 오히려 한 줄기 생기를 열어주었다.
강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상자 안에서 또렷한 울음소리를 듣고 그녀를 거두어 양녀로 삼았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름조차 얻기 전에 또다시 기근이 닥쳤다.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위해 어린 그녀가 찾아간 곳은, 세상 모든 것에 값을 매긴다는 강호의 중개인이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사람이든 새든 짐승이든 모두 값으로 매길 수 있는 존재였다.
난세에 사람 목숨은 풀보다도 가벼웠다. 그녀의 목숨값 역시 처음에는 진귀한 새 깃털 세 개 값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주먹을 꽉 쥐고 중개인을 향해 내질렀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무투의 가치, 목숨을 거는 가치를 말이다. 결국 그녀는 양어머니를 위해 돈 한 보따리와 윤기 나는 백옥 한 개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중개인을 따라 강호를 떠돌았다.
중개인은 그녀가 성도 이름도 없기에 하늘과 다툴 담력이 생겨난 것이라며, 무명인은 설령 천공을 노하게 해도 천공이 벌을 내리려 할 때 사람을 찾지 못해 그저 몇 번 천둥소리만 울릴 뿐이라고 말했다.
중개인은 그녀의 기백을 높이 샀고, 그녀가 아홉 살 되던 해 아무도 감히 맡지 못할 거래를 맡겼다. 묵산도의 매우 중요한 인물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중개인이 던져준 행적 지도를 받아 들고 표시된 길목에서 보름을 기다렸다. 바람과 이슬로 허기를 달래고 암벽을 오르내린 끝에 마침내 목표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아이도 어린아이였다. 심지어 그녀보다 두세 살 어려 보였다. 아무리 사람 목숨이 하찮다지만, 자신도 그 흐름에 휩쓸려 남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중개인의 은혜를 떠올렸다. 어젯밤 다 먹기 아까워 절반만 먹었던 작은 전갱이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런데 그 소년은 뾰족하게 깎은 나무 비수로 눈앞의 덩굴을 조심조심 헤집고 있었다.
"어휴... 바보 같으니라고, 그렇게 해서 언제 다 하려고? 내 걸 써!"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그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비수를 내밀었다. 마치 둘이 처음 만난 게 아닌 것처럼, 소년은 태연하게 그것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비수를 움직이는 손길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덩굴 속에 갇힌 새를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두 자루의 칼과 두 아이가 빼곡한 덩굴을 모두 풀어냈다.
한 마리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두 사람의 운명은 그때부터 교차했다.
묵산도 중요 인물의 목숨은 당연히 거두지 못했다... 해 질 무렵 남자아이를 데리러 온 낚시꾼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사람을 잘못 찾았음을 깨달았다. 그 낚시꾼은 그녀가 왜 왔는지 아는 듯했지만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물었고, 그를 따라 산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디를 말하는가? 이렇게 엉망진창인 세상에서도 모두가 새를 구하는 데 마음을 쓰는 그런 곳인가?
그녀는 가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그간 중개인에게 받은 은혜와 가르침을 갚아야 했다. 열닷새, 열닷새만 더 주면 충분했다.
그녀는 중개인을 위해 더 큰 의뢰를 끝냈다. 한 지역을 괴롭히던 산적 두목을 처단했고,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숲에서 승냥이 가죽 몇 장도 구해다 주고 떠났다.
열엿새째 되는 날 그녀는 약속한 성남의 돌다리 아래로 달려가 새 스승을 따라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다만 아쉽게도 그녀에게 은혜를 베푼 산골 사람들은 나중에 사방을 찾아 헤매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후의 세월 동안 그녀는 여러 일을 겪었고, 하나하나 피로써 담보를 삼아 평생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이 묵산도에 들어갔기에 그녀는 비로소 진정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녀를 '청'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