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만산, '철심 장군'이라는 이름은 처음에 그를 존경하던 백성들이 붙여준 호칭이었다. '철심'이라는 두 글자에는 군심이 쇠처럼 단단하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내와 딸이 거란…
엽만산, '철심 장군'이라는 이름은 처음에 그를 존경하던 백성들이 붙여준 호칭이었다.
'철심'이라는 두 글자에는 군심이 쇠처럼 단단하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내와 딸이 거란에게 끌려가 협박을 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가족이 몰살당했어도 그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이 희생되더라도 성의 모든 백성이 평안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값진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성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거란의 군세는 너무도 거대하고 강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싸웠음에도, 정주는 결국 함락됐다.
퇴군하던 날, 엽만산은 깨달았다. 조정의 주력군이 북상하지 않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나라를 지킬 수도, 잃은 땅을 되찾을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게 그는 13년을 기다렸다. 그 세월 동안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손에 든 칼만은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잡은 손아귀엔 굳은살이 박이고, 휘두른 칼끝엔 집념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주세종의 북벌이 시작되었다.
엽만산은 밤낮으로 닦아두던 갑옷을 다시 입고, 직접 길러낸 천호군을 이끌고 성 아래에서 대군을 기다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북벌은 중도에 멈춰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아내도, 딸도, 아들도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변방의 백성들은 고통 속에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북벌을 멈추겠다고?
...아니, 북벌은 반드시 해야 한다. 뒤에 숨어 비겁하게 손을 놓은 자들이 두려워한다면, 직접 그들을 끌어내서라도 북벌하게 할 것이다.
그는 방향을 돌려 칼끝을 성 안의 백성들에게로 겨눴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희미한 빛 아래에서는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한 성의 백성이 희생되더라도 온 나라의 평안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외적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거란족이 성 안으로 들어오는 걸 봤다고 했다. 그리고 처절한 울음소리가 엽만산이 13년 동안 숨어 지내온 성을 뒤덮었다.
그날 이후, '철심 장군'의 심장은 진짜 쇳덩이처럼 굳어버렸다.
그 후 엽만산은 청하사로 들어가 수행에 들었다. 한 스님이 그에게 말했다. '보리고해를 건너면 행복의 저편에 이를 수 있다네.'
하지만 엽만산은 알고 있었다. 그 고해의 바다는, 자신이 결코 건널 수 없는 바다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