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협? 알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정옥은 젊은 시절 검을 들고 천하를 누볐다. "그 정신 나간 노인 말이야? 성질도 고약하고 고집도 세지." 하지만 중년 이후 그는 외딴섬에 갇혀 하루하루…
"정 대협? 알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정옥은 젊은 시절 검을 들고 천하를 누볐다.
"그 정신 나간 노인 말이야? 성질도 고약하고 고집도 세지." 하지만 중년 이후 그는 외딴섬에 갇혀 하루하루 외로이 지냈다.
아마 인생이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끝내 운명을 믿지 않았다.
양 건화 5년 11월,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서북의 사막엔 찬바람이 몰아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어린 정옥은 집 밖에서 쓰러진 한 남자를 발견했다. 피가 갑옷을 적셔 눈이 시릴 만큼 붉었다. 정옥은 있는 힘을 다해 그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고, 사흘 뒤 남자는 깨어났다. "내 목숨도 참 질기구나." 그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정옥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제자로 삼지는 않았다. 상처가 거의 아물자 검 한 자루와 술 한 항아리, 그리고 비급 한 권을 남기고는 떠나버렸다.
당 천성 2년, 강호에 새로운 협객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가 거칠고 고집스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서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거칠면서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바람이 멈춘 곳이 개봉성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도사가 말했다. "그대는 평생 육친의 인연이 약하고, 부모·아내·자식 모두를 해칠 운명이라오."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말을 믿을 리 없었다. 그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딸 정무아가 태어났을 때, 아내는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다짐했다. 꼭, 딸을 지켜주겠다고. 무아의 백일 날, 그는 마당의 나무 아래에 딸이 시집갈 때 함께 마시려는 마음으로 술 항아리 하나를 묻었다. 그는 서쪽 마을의 불량배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글을 가르치고, 나라 사랑을 가르치고, 무공도 가르쳤다.
인생의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후회하나?" 그때 멈추지 않았다면, 그녀가 자신을 닮지 않았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정무아는 너무나 그를 닮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개운 4년, 거란족이 쳐들어왔다. 정무아는 사람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는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고, 매일 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15년 동안 정신줄을 놓고 살았다.
하지만 꿈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정신을 되찾았다. 그 순간, 그리움과 죄책감,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공을 평생 닦았으면서도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정신을 잃은 채 15년을 허비해 복수하지 못한 분노. 그래도 그는 여전히 운명을 믿지 않았다. 복수의 길은 여러 가지다. 그리고 그때, 서북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