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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아버지가 적을 두려워해 싸움을 피했다는 죄명이 전해졌을 때 정소는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어릴 적, 아버지가 형에게 도법을 가르치시던 …

형과 아버지가 적을 두려워해 싸움을 피했다는 죄명이 전해졌을 때 정소는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어릴 적, 아버지가 형에게 도법을 가르치시던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도를 가로로 눕혀 들며 도는 지키는 데 중점을 두니 사람은 도의 등 뒤에 있어야 한다며, 도와 검은 다르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덧붙이셨다. "너희 형제 중 하나는 칼을 쥐고 다른 하나는 붓을 쥐었으니, 하나는 지키고 하나는 공격하여 이치에 딱 들어맞는구나." 그때 정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도를 쥔 자는 몸을 숨겨야 하고, 자신의 손에 들린 붓이 무기가 된다는 것인지. 훗날 성이 함락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 그 역시 연좌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와 형이 지나치게 몸을 사렸기 때문이라 여겼다. 옥중의 추운 밤, 아무 이유도 없이 매를 맞은 정소는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달빛이 바닥을 타고 흘러와 서리처럼 희고 맑게 번졌다. 그 모습에 얼마 전 먹었던 달콤한 떡이 떠올랐다. 무심코 손을 뻗어 만져 보았지만, 손끝에 닿은 것은 싸늘한 냉기뿐이었다. 인생이 이 지경에 이르니 남은 것은 쓴맛뿐이었다. 그 쓰디쓴 맛이 그의 마음을 굳혔다. 아버지와 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출옥 후, 그는 가장 먼저 웃는 법부터 배웠다. 그다음엔 누구를 만나든 먼저 허리를 굽히고, 말에는 늘 깍듯한 예를 섞는 법을 익혔다. 시간이 더 흘러서는 글씨를 둥그스름하고 원만하게 쓰는 법을 터득했다. 붓은 참으로 무기가 되었다. 비록 인정하고 싶진 않았으나, 어쩌면 아버지의 말씀이 온전히 틀린 것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렇게 살다 보니 좁디좁았던 살길이 금세 넓어졌다. 누군가는 돈을 쥐여 주었고, 누군가는 형님 아우 하며 그를 따랐으며, 그는 마침내 군막 한구석에 번듯한 제 자리 하나를 꿰찰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남들보다 윤택하고 호사스러운 나날로 돌아갔고, 매일같이 단 과자 반 봉지를 사서 조금씩 음미하듯 씹어 삼켰다. 그러던 어느 날, 맹관이라는 자가 찾아와 부친과 형님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들려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진실은 짧은 한 마디에 다 담겨있었다. "원군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님은 칼등 뒤로 숨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의 '도'로 쓰이고 버려졌을 뿐이었다. 진실을 안 후 정소는 두체은을 위해 다시 붓을 들어 보려 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렸던 탓인지 먹물은 번번이 종이 위에서 번져 버렸다. 생각해 보면 지난 세월, 자신 또한 한 자루의 도가 아니었던가? 허리 굽힌 웃는 얼굴 뒤에 숨고 공손한 붓과 먹 사이에 숨었다. 하지만 사람이 도의 등 뒤에 몸을 숨기는 것은 먼저 공격을 막아 내고, 때를 기다렸다가 빈틈을 찔러 되갚기 위해서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말은 옳았다. 그는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충분히 오래 숨었다. 이제 다시 칼을 들 때가 왔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그날 밤 창밖에는 달이 없었다. 하지만 정소는 아버지와 형이 죽은 뒤 처음으로 떡의 단맛을 느꼈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토록 누구에게도 내어 주지 않으려 했던 이 달콤함도, 이제는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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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아버지가 적을 두려워해 싸움을 피했다는 죄명이 전해졌을 때 정소는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어릴 적,…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