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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비역가가 아직 비씨 가문 조상의 이름을 등에 업기 전부터 그는 이미 조주성에서 꽤나 악명 높은 자였다. 그때는 아직 비씨 성을 쓰지도 않았고, 집안은 진작에 몰락한 상태였다. 부모가 …

십여 년 전, 비역가가 아직 비씨 가문 조상의 이름을 등에 업기 전부터 그는 이미 조주성에서 꽤나 악명 높은 자였다. 그때는 아직 비씨 성을 쓰지도 않았고, 집안은 진작에 몰락한 상태였다. 부모가 일찍 죽어 본명도 불릴 일이 없다 보니 본인조차 제 진짜 이름을 잊어버렸고, 남은 건 생김새를 대충 빗댄 별명 하나뿐이었다. 심지어 그 별명조차 그에게 욕을 퍼붓던 자들이 지어준 것이었다. 그에게 호떡 몇 개를 도둑맞은 장사꾼이 욕했다. "이 점박이 놈아, 천벌 받을 놈! 어른 호떡까지 훔치다니!" 그에게 달걀 두 개를 사기당한 할머니도 욕했다. "이 점박이 새끼, 썩을 놈아!" 하지만 아무도 그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수년간 저잣거리에서 구르고 엎어지며 살아온 덕에, 그의 낯짝은 조주성의 성벽보다 두꺼워져 있었다. 저잣거리는 그에게 아첨하는 법, 눈치껏 대세를 따르는 법, 그리고 이 난세에서 어찌 수작을 부리며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저 그 자리에 무릎 한 번 꿇으면 그만이었다. 욕을 먹든 매를 맞든 당장 내 배만 채울 수 있다면,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욕하는 자에겐 헤실헤실 웃으며 맞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자에겐 낄낄거리며 반응했다. 오직 누군가 그를 부모도 없는 놈이라고 욕할 때만 아주 실낱같은 분노를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물을 술이랍시고 바가지에 채워 들이켠 뒤, 유유자적 서루에 쭈그려 앉아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서루의 이야기꾼 선생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많고 많았지만, 그는 유독 삼국지를 좋아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친정의 뿌리가 삼국 시대 명신 비의의 후손이라고 말해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비록 비의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남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여포가 원문에서 창을 쏘아 맞히는 대목에선 가슴이 뛰었고, 제갈승상의 출사표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그 유비는 황숙이라는 이름을 얻고 영웅호걸들과 결의를 맺어 촉을 평정하며 대업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신도 승상처럼 한실을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유황숙처럼 번듯한 이름 하나쯤은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꾼이 말하길, 이른바 이름이란 세상 사람 누구나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당나라 황실은 노자의 이름을 빌렸고, 유방은 당요의 후손을 자처했다. 이 세상에서 남의 이름을 빌린 자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이름을 얻기는 쉬워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이름을 빌릴 줄 아는 자는 많으나 제대로 쓸 줄 아는 자는 적다. 이름이 내 몸에 있다면 마땅히 그에 걸맞게 행해야 하니, 이것이 요점이라고. 그가 선생에게 물었다. 나도 먼저 그럴싸한 이름 하나를 가져도 되겠냐고. 선생이 답했다. 좋다고. 그가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비씨 성을 써도 되겠냐고. 선생이 답했다. 그 또한 가능하다고.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일말의 깨달음이 스쳤다. 이로써 강호에 점박이 얼굴은 사라지고, 오직 비역가만이 남게 되었다. 이름을 빌리는 것은 곧 기세를 빌리는 것이니, 이름을 얻은 것은 그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그는 셈을 마쳤다. 이 명성을 등에 업고 한 걸음씩 위로 기어오르다 보면, 훗날 용과 봉황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서루를 나설 때,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들었소? 중군의 왕청 장군이 그야말로 진짜 영웅이라오!" 비역가가 문득 흥미가 동하여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 왕청 장군이라는 분은 어디에 계시오?" "북쪽이오. 왕청 친위대의 명성을 못 들어봤단 말이오?" 비역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몰아 북쪽으로 향했고,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름이 내 몸에 있으니,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차례다. 그는 생각했다. 이 이름을 어떻게 굴려 먹을지는, 일단 큰 판에 판돈을 걸고 나서 고민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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