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몰아치는 밤, 농가의 초가집에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농부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문을 열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이고, 문을 열어주어도 조만간 죽을 터였다. 그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 농가의 초가집에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농부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문을 열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이고, 문을 열어주어도 조만간 죽을 터였다. 그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처와 딸을 낡은 옷장에 밀어 넣고, 떨리는 손으로 문빗장을 풀었다.
선두에 선 자는 자신을 장의조라 소개했고, 데려온 병사들은 귀의군이라 하였다. 농부는 그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 푸른 옷의 병사들은 그간 보아온 승냥이 같은 자들과는 달라 보였다.
그들은 여물을 빌려 전마에게 먹였고, 마른 장작을 빌려 모닥불을 피웠다. 농부는 안으로 들어와 추위를 피하라 권했으나, 푸른 옷의 병사들은 손을 내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곳은 농부의 집이고, 귀의군은 민가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먼동이 틀 때까지, 초가집 안의 그 누구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군이 농부에게 이름을 물으며, 빌린 것은 반드시 갚겠노라 말했다. 농부는 그저 인사치레려니 여겼다.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데, 어찌 감히 돌려받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간의 시일이 지나, 푸른 옷의 병사들이 다시 나타났다. 새로운 토지 제도와 새로운 호적, 그리고 그 '장의조'라는 이름과 함께. 병사들은 명부에 적힌 농부의 이름을 불렀고, 그에게 일 년 치의 땔감과 여물 세금을 면해 주었다.
농부는 푸른 옷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높으신 양반 나리 중에도 약속을 지키는 자가 있구나. 적어도 이 장의조라는 사람만큼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