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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악은 심의륜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했다. 마른 아이가 학당 구석에 서서 선생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저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아요.' 그런 말은 당연히 동무들의 비웃음을 샀다…

정악은 심의륜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했다. 마른 아이가 학당 구석에 서서 선생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저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아요.' 그런 말은 당연히 동무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정악은 웃지 않았다. 그는 개봉의 부잣집 문 앞에서 썩어가는 고깃국 냄새와, 길가에 얼어 죽은 시체들을 떠올렸다. 얼마 전 있었던 거란의 침입과 도시를 덮친 기근도 함께 생각났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문득 깨달았다. '그럼 우리가 모두 배불리 먹게 하면 되지. 천하가 평온하고 백성이 굶지 않게 만들자!' 정악은 그렇게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그는 진심으로 모두가 살아남길 바랐다. 하지만 그 선한 뜻이 끔찍한 학살로 돌아올 줄은 전혀 몰랐다. 유랑 도적떼가 마을을 덮쳐 사람을 죽이고 곡식을 쓸어갔다. 불길과 울음소리가 뒤엉켜 순식간에 온 세상을 삼켰다. 소년의 순진한 이상도 그 속에서 타버렸다. '왜 이런 일이... 난 분명 사람을 구하려 했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정악은 정완과 친척들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했다. 그는 착한 사람을 구하려다 오히려 악당을 도와주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만약 착한 이를 내버려두면, 착한 이도 악인도 모두 죽고 나머지 사람은 산다. 그러나 남의 생사를 모르는 체하는 사람에게 '무고함'이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걸까? 정악은 생각했다. 혹시 이런 난세에는 선함 따위가 존재해선 안 되는 걸까? '너는 잘못하지 않았다. 선을 행하는 건 언제나 옳아.' 오랜 시간이 지나 정악이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그 협객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그 폭동은 이미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영면의 무덤 주변의 황야에는 수많은 새 무덤들이 늘어서 있었다. '만약 선함이 잘못된 거라면, 너와 나는 아예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협객은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은 정악을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정악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묘비에서 협객을 바라봤다. 그녀를 유심히 살피며 자신을 납득시킬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결국 협객이 움켜쥔 검으로 향했다. '넌 네 선함을 지킬 수 있잖아.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난 안 돼. 내 손엔 칼이 없으니까?' 협객은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칼을 뽑아 적을 베던 순간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만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소년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을 제자로 받아 달라 청했다.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난세의 선의는 너무도 사치스러웠다. 십 년 뒤, 그 협객마저 혼탁한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고, 정악은 또다시 깊은 혼란에 빠졌다. 만약 선행의 전제가 힘이라면, 협객과 가족들은 왜 죽었을까? 어떤 자리에 서야 끝까지 선할 수 있을까? '아니, 힘 때문이 아니야. 악인 때문이다. 그들이 비극을 만들고, 선을 짓밟는 거야.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착한 사람에겐 죽음뿐이야.' 이제 어른이 된 정악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시선을 천천히 승은촌과 하청군 쪽으로 돌렸다. 그곳에 있는 악한 자들을 향해. 정악은 손에 든 칼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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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악은 심의륜을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했다. 마른 아이가 학당 구석에 서서 선생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저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아요.' 그런…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