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도 몰랐다. 평생 게으르게 살아온 터라 생일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아예 주우의 생일을 자기 생일로 삼았다. 어차피 아정이든 여지든 아착이든, 누…
봉이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도 몰랐다. 평생 게으르게 살아온 터라 생일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아예 주우의 생일을 자기 생일로 삼았다. 어차피 아정이든 여지든 아착이든, 누구 생일이든 부엌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봉이의 일이었으니까. 가는 면을 뽑아 장수면을 만들고, 하얗고 통통한 복숭아 모양의 수복떡을 빚고, 제철 채소로 여섯 가지 반찬과 국까지 맞춰내는 일. 언제부턴가 봉이가 국자를 쥐는 날이 칼을 잡는 날보다 많아졌다. 그래서 용교방에 막 들어온 젊은이들이 이 '봉 대장'을 부엌의 우두머리로 착각해 한바탕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세상사는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어떤 일은 오히려 귀찮아도 해야 할 때가 있다. 봉이에게 '그런 일'이란 언제나 주우와 관련된 일이었다. 별수 없지. 물고기 장수가 홍수선을 따라붙어 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매달리는 것'도 잘 써야한다. 책에서 배운 것처럼 느끼하게 굴었다간 세 번도 못 가서 문전박대당했을 거다. 그래도 구류문 형님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열녀도 끈질긴 사내 앞에선 약하다'는 말처럼, 그녀가 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는 바로 부엌 일꾼이 되고, 강남에서 막 올라온 순채와 죽순을 함께 끓여 남쪽 고향의 맛을 냈다. 그녀가 나들이를 원하면 그는 마부가 되어 백휴의 흰 준마를 '빌려', 산속 경화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달리며 약재용 살구꽃을 챙겨왔다. 그리고 그녀가 데리고 온 세 아이까지. 부엌에서 막 나온 봉이는 손을 털며 늘어난 아이 하나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불을 지피고 단랑의 검법으로 절인 생선을 썰고, 동과탕에 감칠맛을 더하며 동해 상인이 들여온 새우 가루를 솔솔 뿌렸다. 냄새가 온 마당을 가득 채울 무렵, 배고픈 아이들의 울음보다 봉이의 웃음이 더 컸다. "밥 다 됐어!" 이번에도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를 아이를 바라보며 봉이는 손에 들고 있던 토기 그릇을 조용히 내밀었다. 됐어, 사람이 있으니 그게 곧 집이지.
예전의 봉이는 늘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홀로 떠돌며 자유롭게 사는 게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스스로 고되고 귀찮은 일을 골라 하는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왜 진흙을 바르고 금칠까지 하며 흙 부처 흉내를 내는 거지?" 그의 물음에 주우는 웃으며 말했다. "진흙 부처라고 해서 부처가 아니란 법 있나요? 강을 건너는 진흙 부처는 녹아내린 게 아니라, 중생으로 돌아간 거예요." 봉이는 입을 다문 채 그 말을 곱씹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삶엔 많은 것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가 있었고, 세 아이가 있었고, 용교방의 형제자매들도 함께 있었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가 부처가 되겠다면, 자신은 그 아래의 청사나 백상이 되면 그뿐이었다. 진흙 부처가 세상을 구하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면... 그 흙탕물쯤은, 먼저 들어가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