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밖의 흰 천은, 부디 그대가 수고로이 걸어주시길. 난성의 삼백 개의 염색 항아리는 이제 모두 피와 불로 가득 찼습니다. 염색의 비법은 이미 장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났고, 마지막 남은 흰 천 한…
성 밖의 흰 천은, 부디 그대가 수고로이 걸어주시길.
난성의 삼백 개의 염색 항아리는 이제 모두 피와 불로 가득 찼습니다. 염색의 비법은 이미 장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났고, 마지막 남은 흰 천 한 필마저도 결국 항복의 깃발이 되어버렸으니, 이 진모씨에겐 그것이 곧 수의나 다름없겠습니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제, 조정에서 인사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새로운 관직으로 부임하라는 인사 명령에, 글귀마다 승진을 축하하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결국, 한 성에 쌓인 무수한 해골도 남의 입에서는 그저 전쟁 피해라는 몇 글자에 지나지 않더군요.
흰 깃발이 바람에 날릴 때, 부디 바람 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 주십시오. 혹여 베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면, 아마 제 아내가 저승의 나하교 머리에서 새 염색방을 연 탓일 겁니다. 생전에 아내는 늘, 다음 생에는 동틀 무렵 여명의 빛깔을 염색해보고 싶다 말하곤 했지요.
진모씨의 한생은 난성을 위해 봄옷 한 벌 짓는 것으로 시작해, 난성에 상복 한 벌 입혀주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마무리라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