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텍스트

두진비의 실력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랑캐 백 명 정도 베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지만 화살에 맞았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노인과의 약속 때문인지 두진비는 죽기 살기로 싸우던 방식을 버리고…

두진비의 실력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랑캐 백 명 정도 베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지만 화살에 맞았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노인과의 약속 때문인지 두진비는 죽기 살기로 싸우던 방식을 버리고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두진비는 오랑캐 백 명을 베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리곤 사람을 잡던 칼을 대장간에 들고 가 뼈를 바르고 고기를 썰기에 적합한 식칼로 만들었다. 진수창를 다시 찾은 두진비는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끝내 노인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미심 적어 하는 그의 귓가에 뭔가를 확인하듯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흘러 들었다. 그 자리에서 돌아서자, 과거 자신과 약속했던 노인을 묘하게 닮은 어떤 젊은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는 장씨 영감의 아들이었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장씨 영감은 얼마 전에 넘어졌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는데, 임종 직전에 두씨 성을 가진 대협이 푸줏간을 물려받으러 올 거라며 자신에게 여기서 기다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장 노인의 아들은 두진비가 돌아올 거라고 전혀 믿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이었기에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이야기를 듣던 두진비는 아들도 있는 장씨 영감이 왜 자신과 같은 낯선 사람에게 푸줏간을 물려주려고 한 건지 문득 궁금했다. 장 노인의 아들은 자신은 푸줏간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푸줏간 때문에 평생 여기에 갇혀 사는 건 너무 지루하다며...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두 대협이 오랑캐 백 명을 베고 돌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던 아들은 그 혈기와 기백을 동경했다. 이야기를 마친 장 노인의 아들이 상자를 꺼내며 이 안에 오미포의 비법이 담겨 있다고 알려줬다. 그는 허리에 검을 찬 채 훌쩍 말에 오르더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떠났다. 두진비는 손에 든 식칼을 꽉 쥐곤, 장씨 영감 푸줏간을 다시 세웠다. 변경 일대의 전란이 날로 격화되면서 진수창에 주둔하는 병력도 연이어 교체됐다. 장 노인의 아들은 다행히 몇 년마다 한 번씩 돌아와, 자신이 몇 명이나 되는 오랑캐를 벴는지, 또 몇 명이나 되는 백성을 구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오랑캐 백 명을 베겠다는 목표를 두 대협보다 더 빨리 이룰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에 돌아왔을 때는, 오랑캐가 많이 모여 있다는 중도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오랑캐를 닥치는 대로 벨 수 있을 거라며... 그 말에 두진비는 장 노인의 아들이 이번에 돌아오면 직접 오미포를 만들게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댓글

—
두진비의 실력이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랑캐 백 명 정도 베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지만 화살에 맞았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노인과의 약속 때문인지 두진비…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