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군이 승전하여 조정으로 돌아가니, 성으로 들어가 천자를 알현할 것이다. 모두 물러나라!" 장안 거리에 깃발이 하늘을 가리고, 사황자가 붉은 전마에 높이 앉아 있으니, 갑옷이 번쩍이고 기세등등한 …
"삼군이 승전하여 조정으로 돌아가니, 성으로 들어가 천자를 알현할 것이다. 모두 물러나라!"
장안 거리에 깃발이 하늘을 가리고, 사황자가 붉은 전마에 높이 앉아 있으니, 갑옷이 번쩍이고 기세등등한 모습이 진정 황조 제일의 소년 장군이라 불릴만했다. 이번에 황도에 온 것은 황제께 승전보를 올리고 삼군의 공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행렬이 막 황도에 들어서는데, 멀리서 또 다른 깃발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당조 태자의 행렬이었다. 사황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 폐하께서 변방 군대를 의심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이번에 태자의 행렬을 보내 길을 다투게 하는 것은 변방 군대의 포상을 깎아내리려는 심산인가? 변방 군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고, 무수히 죽고 다친 끝에 대승을 거두었다. 만약 여기서 태자 행렬에게 길을 양보하고 대승에 걸맞은 포상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다시 변방으로 돌아가겠는가? 마음을 정한 사황자는 차갑게 차마관에게 명했다. "물러설 필요 없다. 그대로 입성하라."
화개 아래에서 태자 역시 의구심에 휩싸였다. 자신의 태자 자리가 이미 위태로운데 오늘 누군가의 계략에 빠진 것인지 입성하는 길에 하필 사황자의 행렬과 마주친 것이다. 사황자에게 길을 내어준다면 황자들 사이에서 위신이 더 약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황제 폐하께서 변방 군대를 더욱 의심하게 될 터이니 그것이야말로 황조의 큰 화근이었다.
"계속 앞으로 가라. 물러서지 마라."
장안 거리에서 한 복면 여인이 성 밖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바로 당조의 공주 이청운이었다. 이번에 사황제가 경성으로 돌아온다 듣고 당연히 가장 먼저 마중을 나간 것이었다. 길가에서 기다리는데 근위병이 달려와 고했다. "태자의 행렬과 사황자의 수레가 성문에서 마주쳤는데 양쪽 모두 양보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이청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곧바로 명했다. "어서 내 수레를 끌고 오너라!"
대로 위에 공주의 수레가 성 밖으로 질주했다. 변방 군대의 행렬 앞에 이르자 병사들이 모두 놀라 진을 치며 대기했다. 공주가 수레 위로 몸을 날리자, 선봉 대장이 그 모습을 보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비장군께서 오셨다! 길을 열어라!"
사황자가 말을 몰고 나오며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원래 공주는 남장을 하고 몰래 사황자의 행렬에 숨어들었다가 전장에 이르러서야 사황자에게 발각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전장을 누비며 적을 무수히 베니 남매의 정이 더욱 두터워졌다. 사황자의 친위병들은 모두 공주를 알았다. 공주는 기마와 궁술에 모두 능했으나 방향을 잘 모르는 탓에 적진을 마구 휘젓고 다녀 '비장군'이라 불렀다.
남매이자 전우인 둘의 재회는 당연히 기쁜 일이니 길게 말하지 않겠다. 공주는 변방 부대가 행렬을 물릴 수 없는 연유를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아예 사황자를 자신의 수레 위로 끌어 올렸다.
"변방 부대의 고충도 알고, 지금 이황자의 처지도 가련합니다. 저를 믿으신다면 제 수레에 오르세요. 제가 모시고 함께 황성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황성 안에서 황매조차 믿지 못한다면 나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수레가 질주하여 태자의 행렬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태자의 친위병 중에 간악한 자가 있었다. 사황자와 공주가 함께 도착한 것을 보고 오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자 악한 마음을 품고 활을 쏘아 사황자의 안면을 노렸다!
사황자는 전장을 오래 누볐으니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화살을 움켜잡자 온몸에 살기가 가득했다.
간악한 자가 다시 활을 쏘려 하자 태자가 크게 놀라 좌우 근위병들에게 당장 처단하라 호통쳤다. 공주가 불길함을 느끼고 사황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황자는 공주를 감싸안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태자와의 다툼은 여기서 끝인가? 청운아, 황성이 편치 않으면 언제든 황형과 함께 변방으로 가자꾸나."
태자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급히 마차에서 내려 사황자에게 예를 올렸다. "부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으니 내 죄다! 사제가 믿어주길 바라네. 이는 결코 내 본의가 아닐세!"
사황자는 태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에 있는 공주만 바라보았다. 공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사황자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태자를 믿는 것이 아니라 황매를 믿는 것이오."
그날 장안성에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공주가 태자와 함께 사황자의 변방 부대를 맞이했으며, 세 사람이 공주의 수레를 타고 입성했다는 것이었다. 남매간의 정이 깊다며 미담이 되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알지 못했다. 이때 후궁전의 신임 황후가 진노하고 있었다. 오황자는 어리니, 네 황자가 다투지 않으면 그녀에게 어찌 기회가 있겠는가?
한편 공주부에서는 삼황자가 여유롭게 공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청운이 막 들어서자 조정에서 위세를 떨치던 삼황자는 본모습을 드러내며 침상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너는 내 친동생이냐, 저 바보나 무부의 친동생이냐?"
이청운은 대꾸도 않고 한 발로 그를 걷어차 밀어내고는 편히 침상에 누웠다.
"나를 이렇게 걷어찰 수 있는 건 너뿐이다! 됐다, 내게 친동생은 너 하나뿐이지." 서운해진 삼황자는 자리를 내주고 조용히 공주 곁을 지켰다. 때는 사월이라 날이 더워지기 시작해 부채를 들고 천천히 흔들되 작은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쪽지를 전해왔다. 삼황자가 받아서 보니 대황자가 보낸 것이었다. "오늘 황매가 참으로 위풍당당하더구나." 삼황자는 원망 섞인 투로 화를 냈다. "대황자는 천한 출신에 다리까지 절뚝거리는 불길한 자인데 왜 그와 교류하느냐?"
이청운이 벌떡 일어나 삼황자를 노려보았다. "뒤에서 형님을 그리 대하십니까?"
"형님? 그자가 태자를 위해 책략을 꾸미고 태자와 한편이 되어 나와 다투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럼 오라버니는 왜 다투십니까? 다들 형제잖아요!"
"우리가 싸우고 싶어서 싸우느냐? 폐하께서... 말해봤자 모를 거다! 내가 다투지 않으면 어찌 너를 지키겠느냐?"
이청운은 일어나 삼황자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화가 나서 문을 닫아버렸다.
"말하지 마세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오라버니 보호 따윈 필요 없어요! 형제간의 우애를 저버리고 태자 자리를 다투겠다면 가서 그 책사들이나 지키며 그자들에게 부채질이나 해주세요!"
천하에 거칠 것이 없던 삼황자는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화풀이할 곳도 없어 화가 나서 외쳤다. "모두 물러가라! 내 정예 호위들이 여기 있는 것도 낭비다!"
궁궐 깊은 곳의 황후는 황제의 수라상을 들다가 공주부의 호위병들이 모두 철수했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태자가 사황자의 변방 군대와 공모하여 반란을 꾀하려 하니 시급히 청운 공주를 입궁시켜 문초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늙고 혼미한 황제는 꼬임에 넘어가 황궁 내위의 동원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청운의 경비가 사라졌으니 어찌 황궁 내위를 당하랴? 공주는 궁으로 끌려갔고, 황후는 자기 편이 되던가, 아니면 죽으라 했다.
한편 삼황자는 친위병을 철수시키고 곧 후회했으나 그 사이 공주는 이미 황후에게 붙잡혀 황궁으로 끌려간 뒤였다. 황제의 소환 없이 삼황자 혼자 어찌 황궁에 들어가겠는가?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어 삼황자는 사람을 나누어 대황자, 태자, 사황자에게 보냈다.
태자는 소식을 듣자마자 삼황자부로 달려가 태자의 권한으로 둘이 급히 함께 입궁했다.
대황자는 평소의 침착함을 잃고 수년간 조정에 심어둔 세력들을 일시에 동원하여 황후가 역모를 꾀하고 군주를 해치려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사황자는 성 밖에 주둔한 변방 군대를 이끌고 역모죄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으로 난입해 황궁을 에워쌌다.
삼황자가 수년간 길러온 결사대들은 황궁 내위가 공주를 해치려 할 때 그녀를 구해냈다. 네 황자가 힘을 합치니 하루아침에 군주가 바뀌었고, 조정은 일신되었다.
훗날 기록에 이르기를, '황천에 정과 의가 없다 말하지 마라. 청운이 움직이자 소란이 그쳤도다. 다들 네 황자가 사직을 지켰다 하나 황녀가 그들의 마음을 잇고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