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그는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든 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일고여덟 명일 뿐인데 백여 명은 되는 듯한 소란을 피우며 재잘거렸다. 영락없이 놀란 참새 떼 같았다…
은근히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그는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든 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일고여덟 명일 뿐인데 백여 명은 되는 듯한 소란을 피우며 재잘거렸다. 영락없이 놀란 참새 떼 같았다.
"견 나으리, 저희 억울함 좀 풀어주셔야지예! 애비 삼촌네 이모부가 우리 집 알 낳는 늙은 암탉을 그냥 삶아버렸다니까예! 목연으로 갚겠다더니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더!"
그가 청천 대감이라도 되는 양 찾아와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견 나으리, 이 헌 널빤지 안 쓰신다고 하셨지예? 우리 집은 산바람이 휑휑 들이치는데, 딱 이거 하나면 되거든예..."
이번엔 널빤지 하나를 슬쩍 챙겨 가려는 속셈이었다.
"견 나으리, 지난번에 지어주신 약이 별로 안 듣던데예, 제가 다리를 아직도 절뚝거리잖아예..."
이자는 아예 번지수부터 잘못 찾았다.
"견 나으리..."
산 사람들의 불평과 요구는 늘 한꺼번에 견귀에게 쏟아졌다. 견귀는 칠이 벗겨진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입으로는 대충 맞장구를 쳤지만, 시선은 이미 창밖으로 빠져나가 서쪽으로 기우는 해에 붙들려 있었다.
셋, 둘, 하나. 견귀는 속으로 시진을 세었다. 인생이 이 황량한 산골까지 굴러떨어지고 가슴속 열혈도 식었건만, 해를 보고 시간을 재는 재주는 새로 생겼다. 이쯤 되면 새옹지마라 불러도 되지 않겠는가?
해가 산 뒤로 숨는 순간, 견귀가 벌떡 일어섰다. "해가 졌소. 오늘 일은 여기까지요. 여러분, 이만 돌아가시구려! 어이, 거기! 그 널빤지는 두고 가시오. 위에 '해우사' 석 자가 안 보이시오?"
"해... 우... 사? 아이고 이름 잘 지었네. 사람 속을 시원하게 비워준다 이거지?" 산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흡족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정말 무식하기는. 분명히 '보통 사람이 풀지 못하는 근심을 풀어준다'라는 해우사인데. 견귀는 사다리에 올라 산 사람 손에서 빼앗아 온 현판을 다시 박으려 했다.
오늘 이 산골짜기에 처박힐 줄 알았다면 예전에 그렇게 악착같이 살 필요가 있었을까.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어.
불견산 특별 아문에 경험 많은 노련한 인물이 필요하다느니, 견귀라는 사람은 교묘한 재주는 없지만 일심으로 사건을 맡아 추호도 놓치지 않는 솜씨가 바로 이 산야에 필요하다느니 했는데, 결과는? 사건은 어디 있지? 여기는 자잘한 일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데 사람도 돈도 없어서 이 현판도 직접 써야 하잖아.
여기 사람들은... 도리를 잘 따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여러 번 강조해도 그들은 여전히 입버릇처럼 '나으리'라고 부른다.
마치 그가 어느 큰 사건을 너무 깊이 파고들다 사방에서 표적이 되어 목숨을 건지려고 이름까지 바꾸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중년 포두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인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불러댔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평생 남의 억울함을 그렇게 풀어 주고 다녔는데, 정작 자신의 원통함은 마음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다니. 됐다, 됐어. 그래도 누군가 불견산으로 인도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진작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 생각에 견귀가 멍해진 사이, 미처 다듬지 못한 나무 가시 하나가 불쑥 검지에 박혔다.
안 건드려, 앞으로 다시는 안 건드려! 무슨 일이든 안 건드릴 거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안 건드린다고!
견귀는 분을 삭이며 널빤지를 박았다. 오늘부터 그는 쉽게 넘어가 주는 능글맞고 개 같은 관리처럼 되리라 결심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키 큰 놈이 받치면 되고, 사소한 일은 그냥 내버려두고, 남은 골칫거리는 미루지 못할 게 없으니 저절로 없어지길 기다리면 된다.
이거다! 그렇게 하자! 반평생 고생했으니, 내일은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자고 보자!
밤이 깊고 산바람이 서늘함을 몰고 왔다. 견귀가 등잔에 불을 붙이고 손을 들어 이를 악물며 말썽꾸러기 나무 가시를 빼내려는데, 창밖에서 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물론 누가 올 줄 알았다. 흥, 여기 온 뒤로 조용한 밤이 하루도 없었다. 큰 사건은 없고 산 사람들 집안 이야기는 끝이 없으니, 오늘 밤에는 또 누구 집 묵은 사연을 몇 경까지 들어야 할지.
문을 열고 보니 의외로 아이 두셋이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조심조심 다가왔다.
"나... 나으리, 아버지가 이 약기름을 드리라고... 오후에 오셨을 때 나으리가 자꾸 이마를 문지르시는 걸 보셨대예. 이게 두통에 잘 듣는대예..." 앞장선 것은 진씨네 막내아들인데, 목소리가 모기보다 작았다.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약기름의 시원하고 떫은 풀 향기를 실어와 산간의 고요한 밤빛 속으로 스며들었다.
견귀는 살짝 멈칫하며 손을 뻗어 거친 도자기 병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서 등잔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건넸다.
그는 문 앞에 서서 그 작은 불빛 한 무더기가 흔들흔들 멀어지다 점점 밤빛에 삼켜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귀에 새 울음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견귀가 고개를 들자, 반쯤 무너진 처마 아래 어느새 새 둥지가 하나 지어져 있었다. 작지만 단단하게 대들보 아래 기대어 있었다.
아, 정말 이상하다. 가슴속의 뜨거운 피는 분명히 다 식었는데...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왜 또 다른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걸까?
좋아, 이 해우사에서 며칠 더 있어도 되겠다. 딱 며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