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는 말없이 나뭇간 앞의 낙엽을 묵묵히 쓸고 있었다. 몇몇 제자가 멀지 않은 곳에 모여 거리낌없이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저자가 스스로 광도문 제일인이라 자처하던 소예인가? 어쩌다 나뭇간…
소예는 말없이 나뭇간 앞의 낙엽을 묵묵히 쓸고 있었다. 몇몇 제자가 멀지 않은 곳에 모여 거리낌없이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저자가 스스로 광도문 제일인이라 자처하던 소예인가? 어쩌다 나뭇간에서 살게 된 거래?"
"자네 몰랐나? 저자는 무슨 사파 무공을 익혔는지 진기가 틀어져서 이제는 폐인이라네!"
"내 그럴 줄 알았지. 부모도 없는 천한 것이 우리 광도문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 강해졌나 했더니, 역시 사술을 쓴 거였어! 퉤! 광도문의 망신이야."
소예가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문중 상하를 때려눕혔던 위세가 여전하여 소인배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일을 계속하려는데 또 다른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이빨 빠진 사나운 개가 아직도 여기서 허세를 부리며 동문을 괴롭히느냐?"
나타난 자가 누구던가? 바로 광도문 대사형 송백서였다. 소인배들은 대사형이 오자 아첨을 떨며 다가갔다. 소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낙엽만 쓸었다.
송백서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대사형이 왔거늘 예를 갖추지 않느냐?"
소예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당신과 나는 모두 문중 제자일 뿐, 위아래가 없소. 게다가 나는 이미 문중에서 제명되었거늘 어찌 당신에게 예를 갖추겠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백서가 번개처럼 움직여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더니 한 손으로 소예의 얼굴을 움켜쥐고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소예는 저항할 힘이 없어 땅에 내동댕이쳐졌고, 순식간에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니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네까짓 게 감히 나에게 도리를 논해? 폐인 주제에?"
송백서가 손을 거두며 역겹다는 듯 흰 손수건으로 닦아내고는 발로 소예의 머리를 짓밟았다. 마치 그가 길가의 들개라도 되는 듯 굴었다.
소예는 본래 중상을 입은 몸이라 기력이 더욱 쇠해졌으나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송백서가 흥미롭다는 듯 몸을 숙여 귀를 가까이 대었다. 그러자 소예는 피가 섞인 침을 송백서의 얼굴에 뱉으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송백서가 대노하여 아예 소예의 목숨을 끊어버리려는데, 한 여인이 마당으로 달려와 소예를 막아섰다. 그녀는 바로 장문인의 딸 왕훈아였다. 소예를 위해 약을 사러 나간 사이에 소예가 하마터면 독수에 당할 뻔한 것이었다.
"사매, 이자는 배신자인데 어찌하여 감싸느냐!"
왕훈아가 소예를 부축하며 분노 서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와 소예는 혼약이 있거늘 대사형이 이토록 그를 다치게 하다니요.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이 훈아의 손이 무정해도 탓하지 마십시오!"
송백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문인께서 그 혼약을 이미 취소하셨거늘 어찌하여 그 폐인 곁에 있느냐? 내 지금 당장 장문인께 가서 너를 내 아내로 달라 청하겠다!"
송백서가 더 말하려는데, 왕훈아가 손을 허리춤의 장검으로 뻗었다. 서늘한 살기가 그에게 쏠리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척하다가 갑자기 왕훈아를 기습해 기절시키려 했다. 다행히 소예가 공력은 없어도 눈썰미는 있어 제때 소리쳐 알렸고, 왕훈아는 가까스로 피했다.
송백서도 더는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훈아, 이 배신자는 광도의 법을 함부로 고치고 외부에 유출했다! 그를 죽이는 것은 장문인의 명이니 미련을 버리거라!"
소예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언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왕훈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예의 손을 잡고 뒷산으로 도망쳤다. 광도문은 소예를 죽이려는 속내를 더는 숨기지 않고 추격병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왕훈아는 홀로 소예를 지키며 싸웠지만 감당하기 어려워 절벽 끝에 이르렀다.
추격병들은 장문인의 딸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봐주었지만, 칼과 검에는 눈이 없는 법. 왕훈아의 몸에 검상이 여러 군데 늘었다. 소예의 몸에 난 상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거센 바람 속에 소예의 피 묻은 도포가 펄럭였다. 그는 왕훈아를 바라보며 자책과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까지만 바래다주오."
왕훈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소예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죽기 전에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의 경맥이 모두 끊어진 것도 장문인의 뜻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장문인에게 광도문 도법의 허점을 지적했으나 그것이 죽음을 초래한 것이었다.
광도문은 소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그 고리타분한 장문인에게 진정한 무예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리라!
한편 소예가 절벽에서 떨어진 후, 왕 장문인은 본래 훈아를 송백서에게 시집보내려 했으나 훈아가 죽어도 따르지 않자 포기했다. 왕 장문인은 연로하여 광도문의 대소사가 점차 송백서의 손에 들어갔다. 송백서는 진전을 얻기 전까지 소예가 먼저 진전을 익힌 것을 시기했으나, 막상 손에 넣고 보니 별것 아니라 여겼다. 그는 수련을 게을리하고 문파 일을 핑계로 술집과 기방을 전전했으며, 화류계도 암암리에 드나들었다. 내공은 닦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 명성을 쌓으니 참으로 화려하기만 허울뿐이었다. 노장문인이 여러 번 충고하자 송백서는 처음에는 공손한 척하다가 나중에는 장문인을 무능한 늙은이라 비난하며 평생 딸 하나 마음대로 못 한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식사마저 끊어버려 노장문인은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삼 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어느 날, 짚신을 신은 소년이 광도문에 와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에 도전하겠노라 선언했다. 광도문 제자들은 무명의 애송이라 여겨 만만히 보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모두 소년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고, 향 하나 피울 시간이 지나자 모두 땅에 널브러져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다.
체면을 구긴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신검문이 광도문의 명성을 시기하여 도전하러 찾아왔다.
송백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신검문의 고수와 맞붙었다. 짚신 소년은 일이 생긴 것을 보고 대범하게 한쪽으로 물러나 손뼉을 치며 웃었다.
"오늘 고수들의 대결을 볼 수 있으니 헛걸음이 아니겠네."
송백서는 광도의 전승을 받았으나 그 정수를 깨닫지 못해 온전히 펼치지 못하여 속전속결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평소 게으름을 피워 체력이 점점 달렸다. 정신이 흐트러진 틈에 칠십 합 만에 상대의 검에 찔려 물러났다.
"내 신검의 검기는 아직 쓰지도 않았거늘 그대는 이미 모든 수를 다 썼구려. 이 광도문은 입만 살았는데 어찌 산문을 열고 문파를 세웠단 말이오?"
송백서는 그 말을 듣고 경악하며 분노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이미 패했으면서도 다시 칼을 뽑았다. 신검문의 고수는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더는 봐주지 않고 검기를 내뿜으며 일검에 송백서의 한쪽 팔을 베어냈다! 송백서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검이 다시 눈앞으로 다가와 목숨을 거두려 했다.
찰나의 순간, 도검이 맞부딪쳤으니, 바로 그 짚신 소년이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신검문의 치명적인 일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형씨, 봐줄 때는 봐주시구려. 강호에서 만난 사이에 어찌 살수를 씁니까?"
신검문 고수는 속으로 놀라며 이 소년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손을 거두며 말했다. "이자는 패하고도 다시 칼을 뽑았으니 너무 비겁하다. 실력도 없으면서 산문을 열고 강호의 호한들을 속이는 꼴을 못 보겠네."
짚신 소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도법은 결코 버릴 것이 아닙니다. 이 자가 요령을 모를 뿐이지요. 내가 그 도법으로 귀하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소년이 광도를 휘두르니 송백서가 쓴 것과 어찌 그리 다른지 몰랐다. 참으로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하고 풍운이 휘몰아쳤다! 태산이 내리누르듯 하여 신검문 고수는 반격할 틈이 조금도 없었고, 은연중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소년이 봐주지 않았다면 그는 여기서 목숨을 잃었으리라!
신검문 고수는 그제야 고개 숙여 고수를 만났음을 인정하고 광도문을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 했다. 송백서가 고통을 참으며 감사를 표하려는데 문밖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짚신 소년은 그 사람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스승님이라 부르며 달려갔다.
"내가 여기 올 줄 어찌 알았느냐?" 삿갓을 쓴 젊은이가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소년은 스승님이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으나, 스승님이 놀라고 하셔서 손이 근질거려 이 문파를 찾아와 비무를 한 것이라 답했다. 그 젊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난장판이 된 광경을 바라보며 제자의 설명을 들었다.
한 팔을 잃은 송백서는 그를 알아보고 허탈하게 웃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타난 이는 바로 소예였다. 당시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나 다행히 죽지 않고 기이한 방법으로 경맥을 회복했다. 그 후 삼 년간 수행하여 몸을 회복한 후 왕훈아를 찾아온 것이었다. 오는 길에 거지 아이 하나를 제자로 거뒀으니 바로 그 짚신 소년이었다.
소예는 복수할 마음은 없으며 오직 왕훈아를 위해 왔다고 했다. 송백서가 어찌 감히 막겠는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노장문인은 그저 눈물만 흘리며 당초 문파 도법의 허점이 새 나갈까 봐 재능 있는 제자를 죽이려 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하지만 소예는 지난 일들에 개의치 않았다. 그 후 그는 여러 제자를 거느리고 왕훈아와 함께 강호를 누비며 협행을 펼치니 천하에 그 명성이 자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