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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병산이 길을 나설 때만 해도 풀잎 위 이슬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길가에는 무너져 내린 초가 쉼터 하나가 있었다. 그는 힐끗 바라볼 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 걸음쯤 지나고서야 다시 걸음을 …

마병산이 길을 나설 때만 해도 풀잎 위 이슬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길가에는 무너져 내린 초가 쉼터 하나가 있었다. 그는 힐끗 바라볼 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 걸음쯤 지나고서야 다시 걸음을 돌려 짐보따리에서 쇠막대와 삼줄을 꺼냈다. 아마도 아버지가 동쪽 별채 창을 손보던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기억 속에는 비스듬히 쏟아지던 햇살과, 넉넉하고 따뜻했던 아버지의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기둥을 다시 세우고 나자 한 노인이 다가와 공손히 절을 했다. 그가 봉룡서원으로 간다는 말을 듣자 노인은 연신 감탄했다. "봉룡서원 제자들은 정말 훌륭하구먼. 참 훌륭해." 마병산은 품속의 보따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은 채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봉룡서원 제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챙겨 온 이유도,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학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먼저 삼줄로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쇠막대로 숨통을 끊는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그 정도면 오히려 자비로운 죽음이었다. 하지만 쇠막대와 삼줄은 이미 이곳에 썼으니, 맨주먹이면 된다. 그편이 더 통쾌할 테니까. 길의 절반쯤 이르렀을 무렵, 태양은 머리 위까지 떠올라 있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이 입가로 흘러들었다. 짭짤했다. 그 맛에 문득 아이들의 눈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가지 마라. 너는 저 아이들과 다르단다." "저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을 뿐이다. 부모를 찾아 주면 울음을 그칠 거야." 아버지는 사람을 찾는 데 능한 분이었다. 아이 하나를 가족에게 돌려보낼 때마다, 그는 사탕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두고 말했다. "재회란 이런 맛이란다." 울음소리와 함께했던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분명 달콤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좋은 아버지를, 학은 어떻게 악인이라 말할 수 있었던 걸까. 모든 것은 학 때문이었다. 학이 아버지를 앗아 갔고, 그의 어린 시절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남겨 준 것은 손에 꼽을 만큼뿐이었다. 묵가의 고서 몇 권, 무공 심법 한 권, 양부모,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던 셀 수 없는 밤들, 그리고... 복수심. 그때 눈앞에 끊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부러진 장부에서는 톱밥 같은 가루가 바스락거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마병산은 짐을 풀어 그 사람이 남긴 기관 설계도를 꺼냈다. 세 번째 페이지를 넘기니 다리를 고치는 방법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는 다시 이어졌다. 그는 조심스레 올라가 발로 몇 번 밟아 보았다. 튼튼했다. 하지만 설계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았다. 악인의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골짜기에서 안개가 피어오를 즈음, 어느덧 깊은 밤이 찾아왔다. 마병산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무꾼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날이었다. 그는 쪼그려 앉아 짐을 펼쳤다. 남은 것은 소매 화살 한 벌뿐. 돌을 옮기려면 지렛대가 필요하고, 부러진 뼈를 맞추려면 부목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결국 화살통마저 부숴 둘로 갈라 부목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부목을 묶어 주던 중, 나무꾼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문득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버지 손에도, 저런 굳은살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래서 집에는 그렇게 많은 불쌍한 아이들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선생의 손에, 어째서 칼을 오래 쥔 사람의 굳은살이 있었던 걸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집을 오갔던 아이들은 모두 갈 곳 없는 아이들이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인신매매범도, 아이를 사고파는 자도 아니었다. 예전 이웃들이 수군거리던 말들이 다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거센 산바람 소리마저 덮어 버릴 만큼 선명하게. 하지만 그 아이들이 집을 떠난 뒤 정말 다시는 울지 않았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나무꾼이 천천히 정신을 차릴 무렵, 마병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안개가 옅어졌다. 고개를 들자 봉룡서원이 멀지 않은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십 년 동안 마음속에서 수도 없이 이 복수의 길을 걸어왔다. 마병산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은 옅은 안개에 가려, 아물다 만 채 다시 벌어진 흉터처럼 보였다. 문득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상의 흑백은 눈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리는 것이다." 그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직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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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병산이 길을 나설 때만 해도 풀잎 위 이슬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길가에는 무너져 내린 초가 쉼터 하나가 있었다. 그는 힐끗 바라볼 뿐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