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텍스트

창 형에게, 내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예전에 형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늘 나를 타박하곤 했지. 이제 형이 감옥살이를 하니,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네. 마음속에 갑자기 하고 싶은 말…

창 형에게, 내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예전에 형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늘 나를 타박하곤 했지. 이제 형이 감옥살이를 하니,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네. 마음속에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서 이참에 다 써버릴게. 사실 이십 년 전에 내가 도망치지 않았던 건 의리 때문이 아니야. 그 꼬맹이들은 패거리를 지어 다니고 다들 뒷배가 있었는데, 난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처지였잖아. 그래서 형한테 맞을까 봐 무서워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거야. 길목을 가로막고 강도질을 벌이던 날, 내가 도망치지 않은 것도 의리 때문이 아니야.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난생처음 들어보는 바람에, 너무 무서워 꼼짝도 못 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거야. 형이 나보고 재물을 지키라고 했던 날, 내가 도망치지 않은 것도 의리 때문이 아니야. 문득 우리 둘의 과거와 막막한 앞날이 떠올라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던 거야. 예전에 형은 항상 나한테 무공을 가르쳐 줄 테니, 같이 강호를 누비자고 큰소리를 쳤었지. 하지만 난 초식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번번이 핑계를 대며 미루기만 했어. 그러다 결국 형이 나를 위해 나서다가 살인 누명을 쓴 탓에, 우린 어쩔 수 없이 강호를 떠돌게 되었지. 그런데 도망치던 도중 노잣돈을 몽땅 도둑맞았을 때 말이야... 그 순간 깨달았어. 우리는 한 명은 무모하고 한 명은 멍청해서, 그야말로 이 난세의 하루살이 같다는 걸. 분명히 살아남고 싶어 발버둥 치는데, 제 발로 죽을 길을 향해 날아가 부딪히는 꼴이잖아. 형은 항상 내가 인생을 멍청하게 산다고 했었지. 그러니 지난 십 년은, 내가 기꺼이 형한테 멍청한 꼴을 실컷 보여준 셈이야. 그러니까 이번만큼은, 그냥 내가 의리를 지킨 거라고 여겨줘. ...횡설수설 많이도 썼네. 어차피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형은 글자도 모르잖아. 나중에 형이 이 서신을 보게 되면, 그냥 우리 어릴 때 즐거웠던 날을 추억하며 쓴 거라고 둘러대야겠어.

댓글

—
창 형에게, 내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예전에 형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늘 나를 타박하곤 했지. 이제 형이 감옥살이를 하니,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