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 선조 하회지는 당 현종 때 이원악사였고, 좌부기의 수장으로 비파에 능했다. 안사의 난 이후 하가는 호주로 내려가 은거하며 농사만 짓고 살면서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하회지가 남긴 돌비파는 …
하가 선조 하회지는 당 현종 때 이원악사였고, 좌부기의 수장으로 비파에 능했다. 안사의 난 이후 하가는 호주로 내려가 은거하며 농사만 짓고 살면서 점점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하회지가 남긴 돌비파는 지하 저장고에 봉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어린 하가 장남이 그것을 찾아냈다.
하가 장남은 어릴 때부터 반항기 많고 시문보다 극문을 더 좋아했다. '한 번 웃으면 만고에 봄이요, 한 번 훌쩍이면 만고에 근심이라'는 구절을 유독 좋아해,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내려놓고 사람들한테 '만춘'이로 부르라 했다. 낡고 기이한 비파가 눈에 밟혀 손을 뻗었지만, 현은 무슨 금속인지 모를 만큼 단단해 어린 하만춘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레 그의 승부욕이 붙었다. 그는 날마다 몰래 저장고로 내려가 힘껏 현을 튕겼고, 며칠 뒤 가장 가는 줄 하나를 겨우 흔들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길게 맴돌며 끊기지 않았고, 여느 현악기보다 더 깊고 오래 울렸다. 하만춘은 그 소리에 마음이 흔들려 저장고 깊숙한 데서 돌비파만 붙들고 살다시피 했고, 모르는 사이 다섯 줄을 다 울릴 만큼 손에 익었다. 기쁜 마음에 흥이 올라 마구 퉁기자 잔향이 두터운 돌벽을 뚫고 나가 온 마을을 놀라게 했다. 때마침 하가가 상 중이었고, 보수적인 하만춘의 아버지는 아이의 무례함에 크게 노해 돌비파를 당장 부수라 했다. 하지만 몸통이 너무 단단해 돌로 내리쳐도, 불에 달궈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결국 절벽 아래로 던져 아들의 악공 꿈을 꺾으려 했다. 이 일로 하만춘은 큰 병을 얻었고, 집안엔 '비파에 정령이 붙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성화가 그치지 않자 부자는 점점 멀어졌고, 만춘도 풀이 죽어 통통하던 몸이 눈에 띄게 야위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한 극단이 마을에 들어와 공연을 했다. 하만춘은 구경 갔다가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는 걸 느꼈다. 집에서도, 가문에서도, 마을에서도 인정 못 받을 바엔 차라리 이들과 떠돌며 살자고 마음먹었고, 두 소매를 훌렁 털고 집을 떠나 극단과 천하를 떠돌기 시작했다.
후일 미앙성의 한 도예 경연에서 어떤 교방 주인이 당나라 때의 비파 한 자루를 꺼냈다. 온통 돌로 만든 비파였다. 하만춘은 단번에 자기 집 비파임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돌려달라고 했다. 교방 주인은 거액을 주고 산 물건이라며 막아섰다. 말다툼이 커지자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사내가 가볍게 나타나 웃으며 말했다. '진짜 주인이라면 이 악기를 칠 수 있겠지요. 두 분이 각자 한 곡씩 연주해 보시지요.' 교방 주인은 비파엔 자신 있다며 먼저 나섰지만, 돌비파가 너무 무거워 제대로 들지도 못했고, 현은 지나치게 단단해 소리도 못 내고 손가락만 베였다. 하만춘은 웃으며 비파를 어깨에 메고 현을 튕겼다. 울림은 멀리까지 퍼졌지만, 음정이 뒤죽박죽이라 곡이 되진 못했다. 망신을 당한 교방 주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사람들을 시켜 비파를 빼앗고 만춘의 두 손을 꺾으라 했고, 하만춘은 버텼지만 수가 몰리자 위험해졌다. 그때 먼저 나섰던 그 사내가 막아서며 신분을 밝혔다. 이원의 대원주, 호창익이었다.
호창익은 값을 치러 비파를 사들인 뒤 만춘에게 말했다. '정말 갖고 싶으면 나와 함께 이원으로 가라.' 하만춘은 그렇게 따랐다. 이원에 들어가자 먼저 음악부터 익히게 했는데, 시작이 순탄치 않았다. 그는 선내 비파줄을 서슬에 끊어 먹은 게 수백 가닥, 진홍빛 북도 수십 면을 깨뜨렸고, 피노루방의 피리, 쟁, 완섬, 폐소, 게고, 비력, 우, 방향, 비파, 박판 등 온갖 악기를 번번이 못 쓰게 만들었다. 끝내 피노루방의 사악은 더 못 참겠다며 '이 아이는 악공 재질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하만춘을 회설방으로 넘겼다. 회설방에서 그는 소부 제자들과 노래와 춤을 익혔지만, 다섯 음을 못 맞춰 입만 떼면 곡의 결이 무너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소무는 그에게 군무만 시켰다. 하지만 하만춘은 골격이 단단해 춤사위에 '회설'다운 가벼움이 없었다. 팔다리가 길고 힘이 좋아 움직일 때마다 옆 사람을 휘말리게 했고, 겨우 검무와 자무에서만 조금 성과를 보였다. 그 외에는 사형들이 피할 정도였다. 회설방의 소무는 '노래도 춤도 재능이 없다'고 보고, 대신 각 부서 사이에서 악기 나르고 무대 꾸미는 일을 맡겼다.
하만춘은 답답했다. 차라리 예전 극단으로 돌아가 떠돌까 싶었다. 밤이면 돌비파를 안고 호숫가로 나가, 억울함과 울분을 현에 실어 마구 쏟아냈다. 그런데 돌비파는 보통 비파보다 소리가 훨씬 세고 길었던 것이다. 울림이 호수 위로 퍼져 이원 사람들이 잠을 설칠 지경이었고, 마침 금풍정에서 술을 하던 호창익도 소리에 놀라 찾아왔다. 내력을 들은 그는 하만춘을 가볍게 시험해 봤다. 손가락은 길고 힘이 좋고, 귀는 밝고 기억도 빠른, 악기 연주에 제격인 자질. 그런데 어째서 피노루방에선 재능이 없다고 했을까? 그가 피노루방에서 저지른 온갖 소동을 확인하고서야 실마리를 잡았다. 하만춘이 손에 익힌 건 하회지가 만든 '돌비파'였다. 몸체는 유난히 무겁고 줄은 유난히 단단하다. 어린 나이에 그런 악기로 입문했으니, 힘 조절을 배울 틈도 없이 감각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호창익은 하만춘을 다시 피노루방으로 돌려보내되, 연주할 때는 반드시 달걀을 손에 쥐게 했다. 달걀이 깨지면 과한 힘의 증거, 한 곡을 끝낼 때까지 달걀이 멀쩡해야 비로소 정식 수업. 그 전엔 돌비파 금지. 그렇게 꼬박 1년을 보내 하만춘은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한 곡을 끝냈고, 그다음부턴 눈에 띄게 빨라졌다. 피노루방의 악기와 악보를 두루 섭렵했다. 보통 악기를 충분히 다룰 힘과 결을 갖추자, 호창익은 돌비파를 다시 쥐여 주며 연주할 때도 계속 달걀을 들라 했다. 3년 뒤, 그는 달걀을 깨뜨리지 않은 채 돌비파로 한 곡을 끝냈고, 그제야 호창익은 그를 '출사'로 인정했다. 이 무렵 하만춘의 비파 솜씨는 피노루방 좌부기 가운데 으뜸이었다.
하만춘은 한곳에 붙들려 있질 못했다. 원주에게 인사만 드리고는 종종 밖으로 나섰고, 그의 이름과 소문은 강호에 서서히 퍼져 갔다. 사람들은 그를 이원의 '여섯 명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