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최고의 사기란, 남을 완벽히 흉내 내면서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십칠이 처음으로 변장한 이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한 여인의 시신이었다. 허름한 폐묘에서 숨을 거둔 그녀는, 몸에…
상
최고의 사기란, 남을 완벽히 흉내 내면서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십칠이 처음으로 변장한 이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한 여인의 시신이었다. 허름한 폐묘에서 숨을 거둔 그녀는, 몸에 은전과 아매에게 보내는 서신 한 장만을 품고 있었다. 길을 지나던 십칠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레 묻어주었고, 여인은 그렇게 길고 긴 잠에 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십칠은 물가에 서서 자신의 새 얼굴을 비춰보았다.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몸을 돌려 성 안으로 돌아갔다.
집 앞 문간에 멈춰 선 십칠은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때 아매가 먼저 달려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두 팔을 타고 전해졌고, 아매는 십칠을 꼭 안은 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십칠은 차마 팔을 뻗어 그녀를 안지 못했고, 가슴은 북을 치듯 요동쳤다.
다시 돌아온 '언니' 앞에서, 아매는 한 마리 작은 새처럼 재잘거렸고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토록 따스하게 다가올 수 있다니.
아매가 활짝 웃으며 눈을 맞출 때마다, 십칠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파도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출 때면, 그 얼굴은 언제나 자신이 사기꾼임을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행복은 잠깐이고,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십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십칠은 밤마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주 악몽에 놀라 깨어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매는 등불을 밝혀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고,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둘이 함께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세상 온갖 속임수를 꿰고, 수많은 의심의 눈길에도 익숙했지만, 아매가 이렇게 뜨겁게 자신을 의지해올 때면 십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매도 가끔은 슬퍼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십칠이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다고 말할 때면, 아매는 이내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세 울 것처럼 울먹이곤 했다.
드디어 달이 가장 둥글게 차오르던 그 날, 아매가 술을 사왔다. 잔과 함께 그녀의 기쁨도 함께 넘쳐흘렀다.
세 번째 잔이 오갈 즈음 아매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아매가 이 술잔에 담아 부르는 그 이름은, 대체 누구였을까?
최고의 사기란 남은 물론, 나 조차도 속이는 것이다.
어쩌면 십칠은 이 거짓을 멈추고, 진작 '네 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어'라고 아매에게 말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마다 자기만을 위해 등불을 밝혀주는 세상 단 하나뿐인 이 존재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입에 올리는 순간, 아매의 언니는 정말로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고, 십칠은 그저 들판에 흔들리는 풀 한 포기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누가 풀 한 포기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겠는가.
술은 흐릿한 취기를 퍼뜨리며 잔잔히 일렁이고, 십칠은 그 술결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기댈 곳 없이 혼자일 때는 마음이 오히려 가벼운데, 가족이 생기고 나면 도리어 가슴이 더 시려온다. 이유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달빛만이 조용히, 두 외로운 이의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십칠이 고개를 들어보니, 눈물 너머로 아매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본디 한 줄기 강물이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강이 상류에서 흐를 때부터, 아매와 언니는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흘러왔다. 아매의 눈길은 언제나 아저와 상단이 떠나는 모습을 뒤에서 따라갔고, 마음 어느 한 귀퉁이에선 또 다른 강물이 찾아와 자신과 나란히 흐를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그녀의 손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릴 때면, 불안했던 마음도 금세 가라앉곤 했다.
마침내 언니가 집에 돌아온 날, 아매는 달려가 언니를 꼭 안았다. 하지만 언니는 그 자리에 굳은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마치 남처럼,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후로 언니는 점점 불안해하고, 밤이면 자주 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매는 등불을 켜고 곁에서 함께해 주었고, 언니의 두려움이 점점 잠으로 바뀌어가면 등불도 자연스레 꺼지곤 했다.
언니의 눈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아매는 그 마음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거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맞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갈 줄만 알았지만, 아매는 옆에 있는 사람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언니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진짜 언니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이 사람은 술이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빛 아래 몸을 웅크린 작은 짐승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 눈빛에는 쓸쓸함과 불안이 서려 있었고,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감춘 채,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만을 조용히 기다리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먼 곳에서 온 서신을 받은 아매는 문 앞에 서서, 손에 서신을 꼭 움켜쥔 채 한참을 망설였다.
사실 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아매도 잘 알고 있었다. 돌아온 그 사람은 사기꾼일 뿐인데, 그 얼굴이 너무나 닮아 있어서, 이 사람마저 떠나가 버리면 이제는 두 번 다시 언니 얼굴을 볼 수 없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고개를 돌리니, '언니'가 작은 뜰에 홀로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아매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신을 찢어 버리고는 술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술잔을 가득 따라 살포시 탁자 위에 놓고, 아매는 조용히 달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잔을 건네자, 술을 마신 사람은 금세 취해 눈물을 글썽였다.
강의 상류에서는 아매와 언니가 서로 기대며 함께 흘러갔다. 그러나 강이 꺾이는 하류에 이르러, 아매는 스스로를 속이며 홀로 흘러가야 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지만 아매에겐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 언니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아매는 조용히 술잔을 든 그 사람을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사기술이 너무나 완벽해서, 아매 역시 기꺼이 속아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