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 언니,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는지요? 요즘 이곳에서 모아둔 새 이야기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답답해서 터질 것만 같아요. 낮에는 소련이가 제 얘기를 가끔 들어주긴 하지만…
고반 언니,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는지요?
요즘 이곳에서 모아둔 새 이야기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답답해서 터질 것만 같아요. 낮에는 소련이가 제 얘기를 가끔 들어주긴 하지만, 고개만 끄덕였다 젓기만 반복할 뿐, 정작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은 그 아이에게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밤마다 슬쩍 몇 자 적어 보고, 다 쓴 뒤엔 스스로 두 번쯤 읽어보다 결국에는 화로불 속에 조용히 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 종잇장이 불길에 살라져 가벼운 재가 되어, 허공을 어른거리며 떠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꼭 누군가 제 얘기에 조용히 답을 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그래도 이번 서신을 예전과 달리 연북맹 이야기 같은 중대한 소식이 하나도 없으니, 이제 언니도 차마 이걸 불에 태우지 못하고, 아마 예쁜 함을 하나 골라 조심스레 고이 간직해두시겠죠. 딱, 제 바람대로예요!
언니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이렇게 전쟁이 한창이고, 호타강 근처 거란족은 바퀴벌레처럼 밟으면 열 마리씩 튀어나온다는데, 어째서 이런 때에 오히려 전할 만한 소식이 없는지, 분명 고개를 갸웃거리시겠죠?
아, 이 모든 게 다 정향이가 요즘 엄청난 비밀을 하나 손에 넣었기 때문이에요. 그걸 속에 감추고 있으니 숨만 쉬어도 심장이 벌렁거릴 지경이랍니다.
하지만 언니한테는 아무것도 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누가 예전에 저더러 수레바퀴 축처럼 잡담이 끝도 없이 돌아간다며 타박하셨나요? 저도 이제 제법 영리해져서, 이번엔 입 꼭 다물고 아무 얘기도 안 하려구요! 어차피 세상은 넓고 하늘은 높은 법, 언니도 지금 제가 어느 처마 밑에서 잡담을 늘어놓고 있는지 모를 테니, 혹여 답답해서 발을 동동 구르신다 한들 절 붙잡으실 수는 없겠죠!
정향은 언제나 언니를 진심으로 존경해 왔어요. 언니는 기씨 장원도, 장사도, 수행도 모두 다 잘 챙기셔서 어디서나 신뢰를 받고 계시죠. 그 명성이 워낙 높아, 변경 일대 백성들 사이에서도 언니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꿀을 머금은 듯,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하지만 머지않아 저도 천하에 이름을 떨칠 거예요. 이번 일만 끝내고 나면, 군영전 무대에도, 찻집의 풍운록에도, 거리마다 팔리는 이야기 책에도 틀림없이 제 이름, 정향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질 테니까요.
언니, 두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