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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를 입은 남자는 주점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번루만큼 화려하진 않으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가 있었다. 병풍 너머 옆자리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시끌벅적했으나, 유독 그의 식탁만은 다른 세상…

청의를 입은 남자는 주점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번루만큼 화려하진 않으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가 있었다. 병풍 너머 옆자리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시끌벅적했으나, 유독 그의 식탁만은 다른 세상인 듯 적막했다. 그는 강남 요리 몇 가지를 청했다. 맑은 국물의 생선 완자와 술지게미에 절인 오리 요리. 본래 중원 사람이었으나 안개가 자욱한 강남에 너무 오래 숨어 지낸 탓에 입맛마저 변하고 말았다. 이제는 너무 짜거나 자극적인 것은 먹지 못하고 담백한 것만 찾게 되었다. 아니, 담백한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미각을 잃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리라. 첩자란 늘 심장은 붕 떠 있고 혀는 굳어 있는 법. 온종일 팽팽하게 당겨진 거문고 현은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 없듯, 긴장감 속에서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개봉의 요리사가 만든 생선 완자는 사실 제대로 된 맛이 아니었다. 강남에서는 '생선 살은 눈처럼 희고 국물은 물처럼 맑은' 것을 으뜸으로 치건만, 이곳의 완자는 밀가루 기운이 강하고 국물에서도 파와 생강의 거친 향이 배어 나왔다. 강남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던 조리법조차 그 물과 흙을 떠나면 결코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이 쓴웃음을 자아냈다. 생각해 보니 세상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이 바로 그 평범한 한 조각임을. 이제 줄은 끊어졌고 남의 말을 훔쳐 듣는 짓도 끝났지만, 귀에는 고질병이 남았다. 병풍 너머로 들려오는 옆자리 사내들의 잡담이 자꾸만 귓속으로 파고든다. 어느 집 아이가 서당을 빠져나가 선생에게 손바닥을 맞았다는 이야기, 기방의 미인이 새 곡을 익혔다는 이야기, 대상국사 문 앞에서 누군가 타지인에게 요강을 골동품이라 속여 팔았다는 이야기...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소리였지만 그는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이런 시정의 헛소리를 안주 삼으니, 제대로 되지 못한 그 생선 완자에서도 조금은 감칠맛이 도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게 다 이렇듯 시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살던 이들의 말을 되풀이하고 사소한 일에 매달려 분주히 움직이는 것.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삶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평범한 날들. "자, 이제 그만 마시세! 아이가 서당 마칠 시간이라 늦으면 아낙에게 혼난다네." 옆에서 터진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가 동전을 던져 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웃음소리가 멀어지자 그는 고개를 돌려 북적이는 거리를 내다보았다. 그런 평범한 일상은 기억 속에서 이미 전생의 일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온 적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거렸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진작 죽었어야 했다. 취화음의 독주를 마시고 죽든지, 한씨 가문이 멸문당하던 날 밤 시체 더미 아래서 죽든지, 궁궐에 침입했을 때 금군의 칼에 죽든지. 오늘 이렇게 이곳에 앉아 생선 완자를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비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릇은 비었고 술잔은 말랐으니 이제 길을 떠날 차례다. 오랫동안 품어온 계책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나, 적어도 한씨 가문에는 도리를 다할 수 있으리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신이 지은 <옥경춘만>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떠들썩한 장터의 외침 속에 묻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곡조였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문밖으로 걸어 나가, 오랜 벗을 만나러 가듯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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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를 입은 남자는 주점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번루만큼 화려하진 않으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가 있었다. 병풍 너머 옆자리에서는 술판이 벌어져 시끌벅적했… | Where Winds Meet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