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 배를 스치는 노래 소리, 돌아갈 꿈이 남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네. 옥경의 다정한 벗이 마음을 담은 연주로 말하네. 강일처럼 어린 나이에 온갖 악기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으레 오만하기 망…
호수 위 배를 스치는 노래 소리, 돌아갈 꿈이 남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네. 옥경의 다정한 벗이 마음을 담은 연주로 말하네.
강일처럼 어린 나이에 온갖 악기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으레 오만하기 망정이다. 수도 있다. 허나 그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음악은 그저 언어일 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음률로 부드럽게 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강일은 자연스레 온종일 음악과 함께하게 되었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음악 천재'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언어는 마치 외진 고향의 말 같아서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강일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고향을 잃은 사람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래서 취화음으로부터 번루에 와서 연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강일은 무척 기뻐했다. 취화음에 훌륭한 연주자, 음악 애호가가 모여 있는 연락방이 있다는 것을 강일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그날은 화창한 날 날이었다. 번루로 향하는 배 안에서 강일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배가 뭍에 닿자마자 배에서 뛰어내렸다. 안내인을 따라 연락방에 이르자, 사람은 보이지 않고 피리 소리가 자신을 반겼다.
귀는 환해졌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피리 소리는 맑고 아름다웠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기교와 맑은 음색이었지만 어쩐지 그 아래로 깊은 슬픔이 깔려있었다. 강일은 누가 연주하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 피리 소리를 듣자니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강일은 그 사람 뒤에 섰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 강일은 그저 조용히 상대를 바라봤다. 가냘픈 체구의 사내였지만 피리 소리에서 천지를 꿰뚫을 듯한 힘찬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선 사내가 강일을 발견하곤 크게 놀라며 누구냐고 물었다.
"강일이라 합니다. 번루에서 연주해 달라는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그 말만 해도 되었을 텐데 갑자기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잃었다 뭍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기대와 흥분이 느껴졌다. 강일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옆에 있던 거문고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방금 피리 소리에서 들었던 한숨이 그의 손가락에서 음표로 변해갔다. 곡이 끝나자 강일이 고개를 들었다. 피리를 연주하던 사내는 거문고 앞에 앉아 강일에게 물었다. "이 곡의 제목이 있습니까?"
강일이 입을 열었다. "즉흥적으로 연주했을 뿐입니다."
"돌아오는 나그네의 섬세한 감성과 산천의 웅장함이 담겨 있군요. '바다 위 밝은 달이 파도를 일으키네'와 같은 유려함도, '삶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소탈함도 담고 있군요. 그런 뜻에서 <산해귀몽>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름이네요."
사내가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강일이로군요." ”
"네, 맞습니다. 선생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사내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제가 그대가 지은 곡에 이름을 지어줬으니, 제 곡에도 이름을 지어주시겠습니까?"
"이름 짓는 데도 서툴고 말도 잘할 줄 몰라서 연주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피리를 부는 사내가 거문고에 올려둔 손을 톡톡 두드렸다.
"스승님, 귀한 손님을 왜 놀리시는 거예요!" 경쾌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철부지 소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강 선생,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셨던데 방주님을 뵈러 오셨던 거군요." ”
강일은 그제야 깨달았다. "방주... 이분이 연락방의 방주시군요. 어쩐지 피리 소리가 그리 마음을 흔들더니..."
방주가 입을 열었다. "어디 강 선생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강일이 황급히 공수했다. "저야말로 방주에게 비할 바가 없습니다."
"방주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니 한위라고 부르십시오." 옥명, 강 선생의 거처는 준비되었느냐?"
"네, 모두 준비했습니다." 능옥명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방금 아래층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스승님께서 평소 연주하던 것과는 달리 웅장하면서도 기개가 넘쳤어요. 강일 선생께서 연주하신 거로군요? 정말 훌륭한 실력을 지니셨네요."
한위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 말은 내 연주가 소심하다는 것이냐?"
능옥명이 씨익 웃었다. "강 선생의 연주만큼 웅장하진 않죠!"
강일은 얼굴을 붉히며 끼어들었다. "과찬이십니다! 저야 그저 악기를 좀 더 다룰 줄 알 뿐인걸요... 한 선생께서야말로 젊은 나이에 방주라니... 음악에 대한 조예도 저완 비교도 안 될 정도이신 걸요."
능옥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저 악기를 좀 더 다룰 줄 안다'뇨! 평범한 사람한테는 두 분과 같은 천재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고요."
강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손을 연신 저었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낭자... 낭자의 손가락이 길어서 거문고를 연주하기에 딱일 것 같은데, 못하실 리가 없죠!"
한위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강 선생께서는 악기는 잘 다루지만 말솜씨는 형편 없군요!"
놀림을 받은 강일은 화를 내기는 커녕 웃음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선생의 피리 연주야말로 대단하죠. 하고픈 말을 모두 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한위가 크게 놀랐다.
은은한 꽃향기가 대청 안에 퍼져 나갔다. 강일이 오기 직전 경성에 폭우가 한바탕 쏟아졌었는데, 이제 비는 그치고 날이 개었다. 높은 곳에 부는 바람이 부드러우니 거문고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이때는 아직 염화호 십곡의 약조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한위는 세상을 뜨기 전이었고, 강일 역시 은퇴하지 않았다. 능옥명 역시 우수에 찬 화현이 아니었을 때였다. 세상에 하나뿐인 곡은 아직 이름 없는 즉흥곡에 불과했다. 그리고 곧 다가올 죽음과 후회 역시 그림자 속에 숨어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다.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