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님께: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향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소. 길을 오가며 본 것들이 내게 참으로 많은 상념을 안겨주었소. 개봉에 있을 때는 번루의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고 풍악 소리가 끊이지 않…
협객님께: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향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소. 길을 오가며 본 것들이 내게 참으로 많은 상념을 안겨주었소.
개봉에 있을 때는 번루의 불빛이 밤새 꺼지지 않고 풍악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몸을 돌려 각문리에 이르니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찬바람 속에서 바들바들 떨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을 보았소.
금명지의 물가에서는 산처럼 거대한 관가의 전함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으나, 안개숲으로 발길을 돌리자 독안개에 화를 입어 열 가구 중 아홉 가구가 텅 빈 마을에서 노약자들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소.
이토록 극명한 차이를 마주하니, 한동안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더이다... 그저 이 찬란한 태평성대 아래, 여전히 썩어가는 상처가 들끓고 있음을 탄식할 뿐이오. 나는 무예를 익힌 지 오래거늘, 손에 쥔 맥도로 저 독기 서린 장막을 베어내어 강호의 동도들과 함께 이 재앙을 풀어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오.
이런 심란한 마음을 안고 붓을 들었으나, 무슨 말을 어찌 적어야 할지 모르겠구려.
본디 일찍 돌아가 그대와 술을 데우며 회포를 풀려 하였소. 허나 홍구 운하를 지나던 중, 관병이 역부들을 채찍질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섰다가 그만 관아의 화를 자초하고 말았소.
그대에게까지 연루될까 염려되어 지금은 잠시 몸을 피하려 하니, 돌아갈 기약이... 아무래도 미뤄질 듯하오(이후 글씨체가 몹시 휘갈겨진 것으로 보아, 황급히 손을 바꿔 쓴 듯하다).
풍파가 잠잠해지면, 내 반드시 불선선으로 돌아가 그대와 함께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실 것이오.
아득히 먼 길을 사이에 두고, 그대의 무탈을 기원하오.
석경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