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주 어르신들께, 백납의를 보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주신 것은 가사가 아니라, 만백성이 하늘을 잇고자 모은 천이며, 예를 올리신 대상 역시 …
량주 어르신들께,
백납의를 보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주신 것은 가사가 아니라, 만백성이 하늘을 잇고자 모은 천이며, 예를 올리신 대상 역시 나한이 아니라, 하서에서 살아남고자 한 이들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백납의는 백여덟 조각의 천이 아니라, 곧 백여덟 가지 고난을 뜻합니다. 경전을 베끼던 승려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먹을 삼아, 붉게 번진 글자를 남겼습니다. 장인들은 밤을 새워 큰 종을 녹였고, 푸른 불길이 하늘을 물들였습니다. 전장에서 쓰러진 이들의 유해는 눈 속에 스며들었고, 차가운 군기를 적셨습니다. 귀의군의 술은 피로 물들었고, 부서진 창을 감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부처란, 금강불괴의 몸이 아니라, 만백성이 심장을 도려내듯 피를 쏟아 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십 년간 피를 흘리며 싸우고, 천 리를 시신으로 메워 이루어 낸 길이 바로 량주가 당으로 돌아온 길이며, 이는 글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피의 경전과도 같습니다.
하서의 한낱 병사에 불과한 제가 어찌 감히 부처님의 옷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바라건대, 여러분께서 이 백납의의 뜻을 이어 함께 이 강산을 수놓아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