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자를 감출 즈음이면, 네가 나와 지낸 세월도 어느새 제법 되었겠구나. 조그만 꼬마였던 네가 내 키를 훌쩍 넘는 날이 오니, '소전관'이라는 별명도 참 잘 지었다 싶다. 내 돈꾸러미가 해마다 길…
이 은자를 감출 즈음이면, 네가 나와 지낸 세월도 어느새 제법 되었겠구나. 조그만 꼬마였던 네가 내 키를 훌쩍 넘는 날이 오니, '소전관'이라는 별명도 참 잘 지었다 싶다. 내 돈꾸러미가 해마다 길어지듯, 네 것도 해마다 길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뿌듯하구나.
이제 소전관이 자라서 제법 커다래졌으니, 이젠 나 전다희처럼 근사한 이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날 네가 와서 내 성을 따라 '전지자'라고 지으면 어떻겠냐고 물었지. 이름만 들어도 돈 복이 굴러들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참, 네 고집도 보통이 아니더구나. 장부엔 도통 흥미도 없고, 또 말 타기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굳이 내 이름을 따르려 한 이유가 뭐냐?
나는 오히려 '치'라는 글자가 어울릴 것 같아, 슬쩍 종이에 적어 네 베개 밑에 숨겨뒀는데, 혹시 네가 찾아봤을지 모르겠구나.
평소에 넌 늘 주인장인 내가 인색하다며, 품삯이 너무 적다고 투덜거리곤 했지. 아이고, 그게 다 젊으니까 나오는 소리야! 내가 다 너한테 저축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던 건데 말이다.
사실 내가 주는 품삯이, 밖의 어른들보다 훨씬 더 많았단다. 손에 쥐면 적어 보일진 몰라도, 그게 다 네가 혹여 병이 들었을 때 쓸 돈이고, 장래에 집을 장만할 밑천이고, 노년에 쓸 여윳돈까지 알뜰하게 모아주던 거였지... 이런 건 어려서부터 차곡차곡 모아두어야, 나중에 돈이 돈을 낳고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법이지!
이쯤하자. 네가 이 서신을 읽을 때쯤엔 나도 이미 늙었을 테고, 너 역시 네 이름을 얻었을 터이니. 그때 네가 명성을 얻고 이 목돈까지 손에 넣게 된다면 내 깊은 마음을 꼭 기억하고 두 번 다신 내가 인색했다는 말은 꺼내지 말아라!
(또 다른 한 장의 종이에는 소전관의 품삯이 매달 빽빽하게 적혀 있고,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내역은 물론, 각종 보조금까지도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은 그의 백 년 이후까지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