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 남편, 떠남, 이 년. 글, 배우고, 기록. 둘째 장 오늘 "집, 편안, 달, 하, 돌아옴..." 글자, 배웠다. 집, 평안하다, 그대는? 열다섯째 장 오늘 또다시 병사 징집이 있었다. …
첫 장
남편, 떠남, 이 년. 글, 배우고, 기록.
둘째 장
오늘 "집, 편안, 달, 하, 돌아옴..." 글자, 배웠다. 집, 평안하다, 그대는?
열다섯째 장
오늘 또다시 병사 징집이 있었다. 장 아주머니네 아이도 끌려갔다. 익히는 글자는 많아지는데, 마을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스물넷째 장
오늘 또 아이와 함께 글을 익혔다. 아버지께서 채미라는 글자를 가르쳐 주셨다.
채미, 채미, 돌아온다, 돌아온다. 아이가 내가 글씨를 틀렸다고 지적했다. 딸은 이렇게 다 컸는데, 그대는 언제 돌아오려나.
마흔다섯째 장
갈대가 노랗게 물들고,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오늘 아침 강에 내려가 물고기를 건지던 중, 울음소리가 들려 물에 빠진 모녀를 구해냈다.
쉰째 장
여자아이가 사흘째 앓아눕고 있다. 아버지가 약초를 구해오셨으니 부디 나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자아이의 어머니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다.
고아에 과부라면 사연이야 많겠지만, 두 사람의 생김새가 어딘가 남다르다...
쉰일곱째 장
그 여자아이 어머니 이름은 이타라고 한다. 알고 보니 거란족이 아니라, 서쪽에서 도망쳐 온 서인이었다. 서쪽 사람이란, 정말 서쪽에서 온 건가? 지금은 북쪽도 서쪽도 모두 전쟁 중이다. 왜 도망쳤는지 물었지만,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예순여덟째 장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추워지고, 아버지도 기침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타 아매가 약초를 좀 보내주었는데, 글을 배우는 건 더디지만 약초는 도통 잘 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생선을 좀 나눠주었다. (붓을 제대로 쥐지 못하는 듯, 글씨가 점점 비뚤어지고 있다)
일흔째 장
알고 보니 해족의 해는 이렇게 쓰는 거였구나.
이타 아매와 함께 수를 놓아 보니, 손재주가 대단해서, 복잡한 무늬도 금세 따라 한다. 다른 민족의 자수법도 여러 가지나 알고 있었다. 우리는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어 팔아서, 먹거리를 조금이나마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매가 여기까지 도망친 까닭이 남편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남편이 거란에 강제로 끌려가 집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이는 그가 겁이 많아 도망병이 되었다 말했고, 또 어떤 이는 군율을 어겨 처형당했다고도 했다. 아매는 남편이 죽었을 리 없다는 믿음 하나로 길을 나섰지만, 하늘도 땅도 넓은 세상, 어디에서 그 이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떠돌다 보니 뒤늦게 자신이 아이를 가진 것을 알았고, 몸을 이끌고 남쪽까지 흘러와 우리 마을에 닿았을 땐 그 아이가 벌써 몇 해를 자라 있었던 게다... 아이고, 이제는 돌아갈 길조차 아득하다. 아버님 말씀에, 만일 우리도 항복한다면 오늘 해족의 일이 곧 우리의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셨다. 요즘 따라 자꾸만 가슴이 철렁이는데, 부디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무사하기만을 바란다. (붓을 제대로 쥐지 못하는 듯, 글씨가 점점 비뚤어지고 있다)
일흔둘째 장
이타 아매가... 나를 찾아왔다... 딸아이 이름을 지어달라 하기에... 말했다... 그냥 루화라고 하자고... (글을 쓰는 이가 붓을 제대로 쥘 힘조차 없는지, 글씨가 더욱 흐트러졌다)
마지막 장
강이 얼어... 물고기가 없다... 나가야 한다... 양식을...
(수기는 여기까지이며 그 뒤로는 더 이상의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