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기낭자에게: 도림에서 그대와 헤어진 뒤 죽음을 각오하고 위험천만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어. 경도장으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을 받곤 마치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진 듯 했으나... 사방이 온통 적인 …
사랑하는 기낭자에게:
도림에서 그대와 헤어진 뒤 죽음을 각오하고 위험천만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어. 경도장으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을 받곤 마치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진 듯 했으나... 사방이 온통 적인 데다, 도와주려는 손길 또한 없어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수두룩해. 경도장이 돕는다고 해도 완벽한 계획을 세우긴 어려울 거야. 달마가 강을 건널 기회가 없다면, 금빛 복숭아를 책임지는 중임은 결국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겠지...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어. 기력을 다해 죽게 된다면 금빛 복숭아를 품에 안고 황하에 몸을 던질 생각이야. 장현장의 유언을 들어주진 못해도 보물이 사특한 자들의 손에 떨어져 무고한 살행에 이용되는 걸 막으려 해. 슬프네... 내 뜻은 막다른 길에 막혀 꺾였지만... 그대의 마음이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니 다행이야.
북산 평원에서 장현장이 들려준 이야기, 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찰의 승려, 피땀을 흘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떠올리던 중에
사문에도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어. 원수를 갚긴커녕 되레 몸을 숙인 채 거짓으로 원수와 잘 지내는 척해야 했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피가 끓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선배들의 충심이 내게 맡겨졌는데,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테니... 후세에 이르러 난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겠지. 이 괴로운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지...
역사는 참으로 무정하지 않아? 서쪽으로 향한 금빛 복숭아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우리가 선배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후세 사람들도 우리를 볼 텐데. 천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생긴 공로와 죄업은 또 누가 심판하게 될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옛 현인들이 모두 떠났으니 그저 그들의 발자취를 뒤따라야 할 뿐...
그대 곁에 더는 머물 수 없을 것 같아. 무심곡으로 돌아가 부디 평안히 지내. 날 사랑해줬던 곳으로 가서 산산이 조각난 강산을 부디 아껴줘. 난세 속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그대처럼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부디 아껴줘...
그리할 수 있다면 이 한 몸 던져 그대의 숭고한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할 테니.
이별은 슬프지만 부디 평안하길 바라.
방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