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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루화는 배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마을에 살았다. 그 무렵만 해도 마을은 아직 지금처럼 적막하지 않았다. 강가에는 그물이 줄지어 널려 있었고 마당에는 말린 생선이 있었다. 아이들은 떼를 지어…

어릴 적 루화는 배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마을에 살았다. 그 무렵만 해도 마을은 아직 지금처럼 적막하지 않았다. 강가에는 그물이 줄지어 널려 있었고 마당에는 말린 생선이 있었다. 아이들은 떼를 지어 닭을 쫓아다니다가, 이내 어른들에게 하나둘 붙잡혀 같은 곳으로 향하곤 했다. 바로 이 할아버지 댁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글을 아는 사람이었다. 글을 안다고는 해도 사실 반 권의 시경만 읽을 줄 알 뿐이었다. 하지만 글자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학문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글을 배울 나이가 된 아이들은 모두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졌다. 엄마는 루화도 나이가 되면 이 할아버지께 글을 배우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은 끝내 오지 않았다. 전쟁이 다시 거세지면서, 아이들은 이 할아버지 댁에 가는 날보다 강가에서 나물을 캐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 할아버지에게는 아하라는 손녀가 있었는데 루화와 같은 나이였다. 둘 다 마을에서 가장 어린아이였지만 신기하게도 나물을 캐러 가면 아하는 늘 바구니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 루화의 바구니도 가득 차긴 했다. 하지만... "넌 왜 잡초만 잔뜩 담았어?... 음, 버섯도 있네. 우리 엄마가 가르쳐주셨는데 이건 캐면 안 돼. 먹으면 탈이 난다고 했어." "다 같은 풀이잖아." 루화는 아하의 바구니를 가리켰다가, 자기 바구니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아니야, 달라. 나만 따라와. 내가 알려 줄게." 그날 저녁 루화의 밥상에는 맛있는 나물들이 잔뜩 올라왔다. 그 뒤로 강가에는 늘 작은 그림자 둘이 함께 있었다. 한 아이가 앞에서 나물을 찾으면, 다른 아이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고사리를 캐고 또 캐니, 고사리도 무성해졌구나." 아하가 고사리 한 움큼을 들어 보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나, 세월만 저물어 가네." 루화도 고사리 한 움큼을 찾아 들었다. "내가 떠나던 그날, 버들가지는 나부끼고..." 루화가 멈춰 섰다. 아하에게 물었다. "버들이 뭐야?" 아하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버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잎이 아주 길고 긴 나무래. 루화 네 땋은 머리보다도 긴가 봐. 우리 엄마가 그랬어. 너랑 네 엄마는 다른 곳에서 왔대. 어쩌면 너희 고향엔 있을지도 몰라." 루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저녁에 돌아가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자기 고향에는 버들이 없고 대신 검은 산과 하얀 물, 그리고 아주 많은 눈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엄마가 루화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루화는 가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곡조는 기억했다. 그래서 아하에게 불러줄 때 가사는 자기가 외울 수 있는 시구를 대신 불렀다. "고사리를 캐고 또 캐니, 고사리도 무성해졌구나... 돌아가자, 돌아가자... 버들가지는 나부끼고 눈발은 하염없이 흩날리네..." 아하는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고향이 똑같구나. 둘 다 눈이 아주 많이 오잖아..." 강물은 맑고 투명했고 어른들은 저마다 일에 바빴다. 두 아이는 강가에서 나물을 캐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둘만의 약속이었다. "나랑 함께 놀고 싶으면 '고사리를 캐고 또 캐니'를 불러." 아하가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나갈 수 있으면 '내가 떠나던 그날'을 부르면서 배 타고 너 만나러 갈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루화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아하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첫날, 루화는 배를 저어 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고사리를 캐고 또 캐니..." 하지만 아하네 집 창문은 닫혔다. 둘째 날, 루화는 배를 저어 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하지만 아하는 루화가 준 갈대 인형과 작은 풍차를 모두 밖으로 던져버렸다. 셋째 날... 열흘째 날... 루화는 변함없이 배를 저으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떠나던 그날, 버들가지는 나부끼고..." 그제야 창문이 열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노랫소리가 아니었다. "너! 넌 오랑캐 쪽에서 온 애잖아! 우리 노래 부르지 마!" 루화는 왜 아하가 자신에게 한족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하가 더 이상 자신의 노랫소리에 답하지 않는지도, 왜 엄마가 자신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화는 분명히 기억했다... "우리 고향이 똑같구나. 둘 다 눈이 아주 많이 오잖아." 올해도 또 눈이 내렸다. 엄마도, 이 할아버지도, 아하도...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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