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널어도 뒤집을 필요 없는 좋은 날씨였다. 방백은 마당에서 빗자루를 휘두르며, 바람에 흩어진 이삭을 살며시 모았다. 병아리들이 빗자루를 졸졸 따라오며, 날리는 밀기울을 다투어 쪼았다. 이웃집…
곡식을 널어도 뒤집을 필요 없는 좋은 날씨였다.
방백은 마당에서 빗자루를 휘두르며, 바람에 흩어진 이삭을 살며시 모았다. 병아리들이 빗자루를 졸졸 따라오며, 날리는 밀기울을 다투어 쪼았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울타리 너머로 한담을 건넸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날이 점점 추워질 거라며, 이리저리 말을 돌리더니 결국 곁에 살뜰히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방백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웃으며 병아리 떼에게 턱짓했다. "내 이미 '식구'가 적지 않아서 말이오. 날마다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하나라도 더 늘면 이 잠깐의 평화조차 사라질 거요. 아이고, 말하다 보니 답답하군. 밭에 나가 바람 좀 쐬어야겠소."
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괭이를 메고 성큼성큼 대문을 나섰고, 자리에 남은 이웃은 고개를 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밭에 흩어진 낱알은 사람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참새들은 귀신같이 그 자리를 찾아낸다. 방백은 천천히 밭을 일구며 오르내리는 새들을 살피다가, 참새가 내려앉으면 다가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새가 놀라 날아오르면 몸을 숙여 흙 묻은 낟알을 주운 뒤, 흙을 불어내고 조심스레 품속 주머니에 넣었다.
여한포의 마지막 남은 감 두 알은 오늘도 간발의 차로 앞사람이 먼저 사가고 말았다. 며칠째 반복되던 일이라, 방백은 이제 익숙하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늘빛이 짙푸른 빛에서 찬란한 주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는 멍하니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감은 못 샀지만, 적어도 이 노을만은 놓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하늘에 정신이 팔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감 한 알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너무 익어버린 감은 머리카락을 끈적하게 적셨다.
그는 손바닥에 놓인 감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드니 그저 감나무 한 그루만 보일 뿐이었다.
외로움이 맴도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쓰던 괴담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 이야기에는 털이 누르스름한 영물이 나온다. 그 영물은 개로 태어나 누렁이라는 천한 이름을 얻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사자라고 믿었다. 집 마당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느 개와는 달랐다. 고양이도 토끼도 쫓지 않고, 찌꺼기도 먹지 않으며, 개노릇을 다하지 않다가 결국 천뢰에 맞아 죽는 녀석이었다.
집 마당의 돌 탁자로 돌아오니 먹 자국 사이로 병아리들이 쪼다 남긴 밀기울이 묻어 있었다. 방백은 부스러기를 집어 들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라 다시 붓을 들었다. 누렁이의 넋이 스러지기 직전, 온갖 새가 마치 왕생의 의식을 치르듯 이슬을 머금고 와 깃털로 그 몸을 덮어주고, 이윽고 몸이 문드러지며 연기가 되어 새벽의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내용이었다.
기르는 새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고 따스한 최후를 맞다니... 썩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멀리서 젊은이들이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옷차림이 다 흐트러진 자들이 손에 지도를 쥔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흰옷에는 진흙과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방백이 농을 던지려는 찰나, 그 다섯 청년의 멍한 눈동자가 그와 마주쳤다. 넋을 놓고 있던 그들은 방백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앞다투어 달려오더니, 코앞에서 뒤엉켜 고꾸라졌다.
"사숙! 사숙! 방 사숙 되십니까?"
사실 방백은 그들의 차림새를 보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 사형이 거두는 제자는 어째 갈수록 맹한 것 같구나."
그러자 청년들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눈물을 보자 마음이 절로 불안해졌다. 핏빛 석양이 주홍빛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사숙... 문진관이... 사라졌습니다..."
과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날은 이제 점점 추워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