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대부터 송료주를 빚는 전통이 있었다. 유우석은 <송오사노협률부호남사막>이라는 시에서 "귤나무가 늘어선 모래섬은 어두워지고 송료주 주막에선 향기가 가득하네"라고 읊었고, 이상은도 <부지배명부…
당나라 시대부터 송료주를 빚는 전통이 있었다. 유우석은 <송오사노협률부호남사막>이라는 시에서 "귤나무가 늘어선 모래섬은 어두워지고 송료주 주막에선 향기가 가득하네"라고 읊었고, 이상은도 <부지배명부소거>에서 송료주를 묘사하며 "외상으로 송료주 한 말을 얻어 그대와 함께 가슴속 번뇌를 씻어낸다"라고 적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소동파가 정주 태수로 부임했을 때 현지의 양조 기술을 바탕으로 중산 송료주를 개량하고 <중산송료부>를 지어 "달콤하지만 끝에 은은한 쓴맛이 남고, 그 풍취가 유독 고고하네. 단맛과 신맛은 쉽게 상하니, 량주의 포도주를 비웃을 만하다"라고 찬미했다.